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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세요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가끔은 책을 빌어서 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게 책이 슬퍼서 울었다면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했겠지만, 내 모든것을 내려놓고 실컷 울어 버린 밤. 그 밤은 후련함이 그득했다.
최근들어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은 처음이였다.
영화나 책을 보며 잘 우는 편이지만 대부분 얕은 울음일 뿐이였다.
그러나 50페이지 정도를 남겨 놓고 터진 울음은 깊은 울음이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옥죄는 아픔이 서려 있었다. 한장의 휴지가 눈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닦아내고 닦아 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 눈물은 어디서 샘솟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나의 눈물의 근원은 깊었다.
분명 답답한 나의 마음이 보태져서 쏟아낸 눈물이였지만 잠시 나의 마음을 기대었던 것일 뿐, 책을 통해서 얻은 아픔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 아픔의 중점에는 모토가 있었다.
리리카와의 감동적인 재회를 만들 수도 있었고 좀 더 편안하게 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모토는 자신을 절제했다.
리리카를 위해서. 오로지 리리카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 모든 짐을 혼자서 지고 떠나버렸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리리카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 마음을 상상할 수 없기에 모토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그랬기에 그 아픔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밝혀진 모토와 리리카의 진짜 관계는 나를 공허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모토와 리리카의 편지를 모조리 읽고 리리카와 모토의 입장을 겪어버린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남겨진 리리카를 위해서도 아니였고 떠나버린 모토를 위한 것도 아닌 덩그러니 남겨진 고통이였다. 차라리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토의 안타까움, 리리카의 슬픔에서 우왕좌왕 하는 나는 생각할 수 있는게 고작 이 정도였다.
평소에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편지로 이루어진 이 책이 참 정겹게 다가왔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고 서투르면 서툰대로, 아프면 슬픈대로, 가식없이 드러내는 그들의 편지는 또 다른 매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편지이기에 가능한 속내의 드러냄과 후회의 중얼거림은 리리카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었다. 모토가 시작한 편지였지만 상처와 외로움으로 얼룩진 리리카의 마음을 모토의 편지가 녹여주고 있었다.
우주에 편지를 쓰듯 쓰라고 했지만 상대가 모토이기에 가능한 편지들, 그 편지를 보며 안타까움에 안쓰러움에 몸부림 쳤을 모토.
그들을 가로막는 건 없었지만 모토는 자신이 시작한 편지로 상처를 주기는 싫었다.
그래서 자신의 상황을 적당히 꾸몄고,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을 끝까지 가지고 처음 리리카와 한 약속을 지키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홀로 남겨질 리리카가 미치도록 걱정이 되었겠지만 자신으로 인해 또 다른 아픔을 주기 싫어서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특히나 리리카가 그동안 당한 것들) 다 가지고 간 것이다.
살아갈 자의 몫과 죽을자의 몫을 자신의 기준으로 나눠 가져간 모토가 때로는 야속했지만, 리리카의 입장도 이해못할 것 많은 아니다.
세상을 등지려고도 했고 버려졌다는 사실에 지금껏 억눌려져 있는 외로움을 가진 리리카에게 모토는 또 다른 좌절을 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리리카와의 진짜 관계도 숨기며 지켜 주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모토의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 과정을 모두 알게 된 리리카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이미 모토는 자신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처음 받아본 관심과 사랑을 품을 줄 몰랐기에 모든것이 서툴렀던 리리카는 모토가 남긴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세상을 향해 힘찬 발돋움을 한다.
모토를 볼 수는 없지만, 모토의 편지를 받을 수는 없지만 모토가 남긴 모든 흔적과 마음은 리리카를 더이상 어두움으로 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젠 정말로 우주에 있는 모토에게 편지를 써야 겠지만 리리카는 모토로 인해 진귀한 선물을 받았다. 삶을 사랑하는 방법.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토와 리리카를 통해서 사랑의 다른면을 본 것 같다.
남, 녀간의 사랑에만 온통 집중이 쏟아지는 지금, 세상을 따듯하게 보는 시선, 소소함을 행복으로 느끼는 마음, 그 마음을 온전히 보여준 책이였다.
늘 어딘가에 정착되지 못하고 두둥실 떠있는 느낌이였는데, 두둥실 떠 있어도 나의 존재가 소중해 지는 느낌이였다.
리리카처럼 힘차게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모토의 사랑이 내게도 전해진거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