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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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쏟아지는 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차를 홀짝이며 노트북을 타닥타닥 두드리고 이 순간이 나름 평안해 보인다. 그런데 나의 이런 행동은 물론이고 나의 생각, 내가 쓰고 있는 글씨까지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과연 그런 상태의 나를 온전한 자아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생각을 지닌 존재지만 이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감시당해야 한다면 나를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신어의 완전한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려는 데 있다는 걸 자넨 모르겠나? 결국에 가서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해자는 걸세. 왜냐하면 그걸 나타낼 낱말이 없으니까 말이야. 68~69쪽

그간 써 왔던 ‘정상적인 언어’는 ‘구어’가 되고, 사고의 폭을 좁히기 위해 ‘신어’를 제작하고 실제로 ‘낱말들을 매일같이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씩 폐기’ 하는 ‘언어를 뼈만 남기고 깎아내는’ 작업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쓸 수 없고, 쓸 필요도 없을 때 이미 사고도 자동적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하면, 인간성을 지닌 마지막 인간이라고 평해지는 윈스턴 스미스의 고민과 결말은 그야 말로 더 끔찍하다. 윈스턴이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인간성을 지닌 인간이기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그의 저항이 파문이 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린, 생각이란 걸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길 바랐다. 혹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윈스턴 스미스가 한 일이 전설로 남아 인간됨을 잊지 않길 바랐다. 그게 너무 큰 바람이었음을,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이 소설을 보며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소설 속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3대 초강대국으로 나뉘어 의미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승리도 패배도 없는, 전면전도 종전도 없는’ 전쟁 가운데 윈스턴 스미스가 속해 있는 곳은 오세아니아이다. 총 4부의 행정부로 나뉘어 있는데, 평화부는 군사, 애정부는 사상, 풍부부는 물자, 진리부는 선전을 맡아 통치해 가며 이 모든 행정부를 관리하는 것이 ‘당’ 이다. ‘당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거대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의지에 반해 알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사전 예고 없이 몇 초 만에 수억만 명의 생명을 죽이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이라는 당의 슬로건 아래 자의적으로 2분 증오가 행해지고, 부모의 잠꼬대까지도 사상경찰에 고발하는 자녀들, 어느 곳이나 사람들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과 산과 야외를 감시하는 마이크로폰은 ‘당’에서 요구하는 인간으로 살게끔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인물은 ‘빅 브라더’로 실재하는지 알 수 없는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지만 그의 권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빅 브라더’의 감시 아래 그를 찬양하며 종속되지만, 이를 거부한 윈스턴 스미스는 이 세계에서 한낱 소소한 저항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비밀 일기장을 몰래 구입해 방안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의 사각지대에서 일기를 쓰는 행위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1984년 4월 4일에 첫 일기가 시작되고, 그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언제 들킬까 불안감이 내내 잠재해 있었다. 그가 진리부 소속이기 때문에 이런 행위에 대해 좀 더 용이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이런 위험한 행동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결론을 내리기조차 슬퍼진다.


당신을 사랑해요. 136쪽

오로지 빅브라더만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남녀 간의 사랑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줄리아를 만나고 그녀와 위험한 밀회를 즐기는 일이 불안하지만 얼마나 자유로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감정이 변하는 것도 감지해내는 텔레스크린을 속여 그녀를 만나고, 대화를 하고,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윈스턴 스미스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윈스턴 스미스가 생각이라는 걸 하고, 일기를 쓰고, 줄리아를 만나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내내 마음을 괴롭혔던 불안함은 결국 드러나고 만다. 그들은 체코되고 끝까지 저항할거라 여겼던 윈스턴 스미스는 끔찍한 고문과 세뇌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빅브라더를 사랑했다고 고백하게 된다.

윈스턴, 자네가 인간이라면 자네는 마지막 인간이야. 자네와 같은 인간들은 멸종했어. (…)자넨 자네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자네는 역사 밖에 있고 존재하지도 않아. 332쪽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윈스턴 스미스는 ‘우리에게 반항하는 한 우리는 절대 처형하지 않아. 우리는 그를 개조하고, 그의 속마음을 움켜쥐고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그들의 말대로 변모해 간다. ‘자유는 굴종’을 인정하고, ‘2+2=5’까지 인정했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쥐 고문 앞에서 그는 그 고문을 피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줄리아한테 해요! 줄리아한테 해요! 내가 아니야! 줄리아야! 그 여자한테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단 말이에요! 얼굴을 갈기갈기 찢고, 뼈다귀가 나올 때까지 해치워요. 내가 아냐! 줄리아한테 해! 나는 안 돼! 353쪽

한 인간이 완전히 ‘개조’ 되어버리는 순간을 너무나 섬뜩하고 그려낸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윈스턴 스미스인지, 기꺼이 그 시대에 복종하는 보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인지 혼란스러웠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우리 삶 곳곳에 빅브라더 산재해 있음을 익히 알고 있고, 저자가 약 30년 뒤를 예상하며 쓴 소설은 완전히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다름은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 사고를 인간에게 한정짓는 것도 모순일 수 있지만 인간됨의 사고를 과연 누가 구분하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대는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 의한 철저한 계획이라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저자가 이 소설에서 인간 미래에 대한 절망과 그에 대한 경고를 나타냈다고 했듯이 독재와 전체주의에 반대한 ‘인간의 본질을 상실한 영혼 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 자체에 우월함을 가지면 안 된다. 기준이 모호하더라도 나의 생각이 정당한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삶을 산산조각 내고 있지는 않은지, 편협한 사고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닌지를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한다. 너무나 미온적이고 지지부진하더라도 저자가 반대하는 전체주의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이러한 미미한 노력이라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고문이 당도하지 않은 이상, 아직 내게 닥칠 불행과 자유 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릴 여력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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