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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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가 이토록 죽음을 숨긴다는 것은 모든 문화 중에서 우리야말로 임박한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며 산다는 뜻이다. 17쪽

 

죽음은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도록 부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언젠가는 닥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미루고 있는 듯하다. ‘알베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죽음이 최후의 상태라는 사실이 삶을 부조리하게 만들며, 이 사실을 부정하려고 쾌락과 성취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역설’했듯이 죽음이 곧 닥칠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죽음이 오는 시기를 알 수 없다면,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는 어떤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T. S. 엘리엇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이 곧 끝이 아닐까 봐 그게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라고 했다. 32~33쪽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때 못지않게 도덕주의로 흐르면서 타인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이고, 벌하고 추방하는 방식은 종교의 정결 의식과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했다. 즉 ‘인간은 도덕적 반사(절대도덕, 죄와 심판, 죄책감과 수치심의 벌 등에 대한 신념)’를 버릴 수 없다고 했는데,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기존의 기본 신념을 버렸고, 회개하거나 은혜와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유구한 자원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마치 레이더망에 걸리길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도덕주의에 어긋난 행동을 보이면 신랄하게 비난하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다. 하지만 회개와 은혜,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유구한 자원을 알고 있는 나에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자는 죽든 살든 결과와 무관하게 늘 죽음을 이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기에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지금까지보다도 더 행복하고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뿐이다. 42쪽

 

그렇다고 태연하게 늘 죽음을 이길 수는 없다. ‘죽음은 본연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울라고 할 뿐만 아니라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알면서도 그의 무덤 앞에서 슬퍼하고 노하시기까지 하셨다고 말한다. 바울도 슬픔 뒤에 ‘소망’이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소망이 바로 예수님이 정복하신 ‘죽음’이라는 사실을 믿고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다. 저자는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죽음’을 우리 앞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게 되거든 당신을 거기로 인도하신 분이 목자이신 예수님임을 잊지 말라. 그분이 당신을 위로하시며,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을 힘과 깊이와 성장을 여러모로 더해주신다. 그러니 그분의 임재를 감사하고, 자기연민을 물리치고, 기도로 그분을 구하라. 110쪽

 

죽음을 앞둔 이를 위해 기도할 때나, 추도 예배를 드릴 때 시편 23편을 자주 인용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 말씀에는 ‘애통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가 총망라 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의미가 좀 더 가까이 와 닿는 것을 느낀다. ‘죽음’이 더 이상 추상적인 일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죽음과 같은 절망과 고난과 어려움은 산재해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임재를 기억하려 한다. ‘모두에게 버림받으신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늘 내 곁에 계신다는 사실처럼 든든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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