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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 -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빼앗긴 M1900을 찾아서
이성주 지음, 우라웍스 기획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 의거에서 사용한 M1900을 복각한다.
이 ‘황당한’ 프로젝트의 시작은 총을 좋아하는 40대 세 남자가 우연히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 전시된 총을 보고 나서였다. 실제 안중근이 사용한 모델과 다른 ‘브라우닝 하이파워’가 전시되어 있었고, 한국 안중근 기념관에도 ‘플라스틱 덩어리 총’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 만들어 볼까’ 라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엄청난 일이 되어버렸다. 2018년 4월에 생각하고 의거 일에 맞춰 같은 해 10월 26일에 전달하려 했지만, 더 의미 있게 안중근 장군 의거 110주년인 2019년에 맞춰 진행되었다. 얼핏 시간이 넉넉하겠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보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흔들릴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똑같은 총이 없다고 해서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50쪽
이런 의문이 충분히 들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왜 안중근 장군이 M1900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본 적도 없고, 복각의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총기 복각’에서 ‘사격 재현’으로 일이 커지면서 우리나라가 총기 청정 국가이며, 그렇기 때문에 총기 반입은 엄청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렵게 미국에서 M1900를 구했지만(판매자에게 이 모든 사연을 설명하면서까지) 문제는 배송이었다. 결국 우리나라가 총기 청정 국가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사격 재현은 미국에서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안중근의 총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총을 통해서 인간 안중근의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안중근의 총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역사가 빠질 수 없다. 이토 히로부미란 인물을 이해하고, 왜 그를 사살해야 했는지를 알려면 일본 역사도 알아야 했다. 저자는 총을 찾는 프로젝트는 흡인력 있게 전달하면서 안중근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깊고 진중하게 펼쳐 놓는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제국주의의 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므로 막부의 끝자락을 거쳐 메이지유신의 성공으로 근대화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로 가는 모든 과정을 되짚는다. 얼핏 우리에게 우호적(절대 목적 없이 그럴 수는 없다)으로 보인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했을 당시 일본은 오히려 한일합방을 앞당겼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토 히로부미는 ‘큰 잡음 없이 식민지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지 식민지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안중근 의사가 아니었다면 ‘일본에게 완벽하게 종속’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안중근 장군의 총 사격 시간은 ‘6초’였다. 그리고 ‘현대 권총 사격법으로도 상식 밖이라 할 수 있는’ 한 손 격발이었다. 결국 ‘M1900과 7.65밀리미터 탄이 한 손으로도 충분히 반동을 받아 낼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총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거기에 안중근 장군은 본래 총을 잘 다루는 명사수에다 의거를 개시하기 3개월 전부터 집중적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다 시야가 제한되어 있는 악조건 속에서도 ‘일곱 발을 발사해 표적 넷에 여섯 발을 맞혔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지만 ‘안중근의 실력’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미국에서 사격 재현 실험은 세 가지였다. 한 손 사격과 양손 사격의 정확도 측정, M1900 자동권총과 리볼버 권총의 연사 속도 측정, 덤덤탄의 파괴력 측정이었다. 저자는 두 명의 전문 슈터에게 두 종류의 총 사격을 맡겼고, 그렇게 긴 어려움을 뚫고 모든 실험이 끝났을 때 ‘선택을 했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 년 반 동안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달려오면서 직접 M1900를 조우하고, 사격 재현을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동안 저자에게 들을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으므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안중근 장군이 사용한 M1900는 분명 실존했지만 사라져버렸다. 일본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진 채 그 총을 되찾고 싶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총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사격 재현도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하고,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본 국가 기관에 방문해 흔적을 찾으러 간다. 여전히 총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라시에 있는 다이린지(대림사)의 주지 스님으로부터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의미를 듣게 된다.
익히 알고 있듯이 뤼순 감옥의 간수 지바 도시치와 안중근은 우정을 나누었고,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에 지바 도시치에 유묵을 건넨다. 지바 도시치는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다니던 절인 다이린지에 유묵과 위패를 함께 모셨고, 지난 1979년 안중근 장군 탄생 100주년에 맞춰 한국으로 반환되었다고 한다. 주지 스님에게 프로젝트의 의미를 전달했더니 그 일을 반대하시면서, ‘지엽적인 부분에 천착해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안중근이란 분의 본령에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계기야 어찌 되었건 ‘안중근이란 사람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우리에게 남긴 뜻을 후학들이 이어받’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이 우리의 할 일인지도 모른다. 방법이 다를 뿐이지 우리도 ‘인간 안중근’이 걸어갔던 그 길이 무엇인지 묻고, 나름대로의 방향을 향해 가는 게 보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게 남은 철학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