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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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들이 입고 있는 목부터 퍼지는 붉은 드레스가 뭔가를 불안하게 한다. 화려한 색은 시녀임을 밝히고 있지만 존재는 철저히 가려지는 역설. 시녀 양성 교육 센터를 거친 오브프레드의 독백으로 그녀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전말이 드러난다. 전체주의 속에 갇혀 버린 그녀의 삶은 생기라곤 하나도 없이, 오로지 사령관의 아이를 가져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여자들의 옷으로 신분을 판별하고, ‘가게 이름조차 과도한 유혹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그림으로 간판을 식별하게 만드는 곳. 장벽에는 불법을 저지른 자들의 시체를 메달아 놓고, 그것을 보며 경멸과 증오심을 가져도 되는 곳. 그런 곳을 알아가는 것조차 결코 녹록치 않았다.

 

시녀로 살아가는 게 비참을 넘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게 만들게 하는 힘은 아무래도 소설보다 그래픽 노블의 힘이 아닌가 싶다. 소설로 읽었다면 너무 어두워 덮어버렸을지도 모를 작품을, 화려하고 생생하면서 참담함으로 이끄는 그림의 힘이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활자만으로 불가능했던 압도적 표현력’이라는 말처럼, 어느 한 장면을 허투루 볼 수 없었다. 그림이 색을 띠지 않을 때보다 오히려 화려하게 색을 띠는 것조차 부자연스럽게 만들었고, 내면 깊숙이 불안을 끌어냈다. 결론을 알 수 없어 막막했고, 이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오브프레드의 독백과 함께 완전히 이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령관과 단둘이 만나는 건 금지된 일이다. 우리는 번식을 위해 존재한다. 첩도 아니고, 게이샤나 창녀도 아니다. 우리는 두 발 달린 자궁이자 성스러운 그릇, 걸어 다니는 성배일 뿐.

 

시녀들의 목적이 분명하기에 사령관과 관계를 맺을 때도 경악스럽다. 시녀가 철저히 자궁의 역할만 하도록 사령관의 아내도 그 자리에 동석한다. 일을 치르고 난 뒤 누가 더 괴로운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의 역할만 수행했을 때 나름의 평화(?)가 공존한다. 그런 그녀에게 사령관은 은밀하게 따로 만나기를 원한다. 나름의 데이트라는 명목으로 비밀스런 클럽에 데려가고 그곳은 과거의 자유를 방탕하게 누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시녀 생활을 적응하지 못한 오브프레드의 친구를 만난다. 장소만 다를 뿐 그곳 생활도 정상적인 삶은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것들이 하나도 없기에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 속에는 너무 많은 고통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철저히 감시받고 자유가 사라진 사회는 아니었다. 오브프레드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딸아이도 있다. 시녀로 살아가야 하는 중에도 종종 떠올린 그녀의 과거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회였다. 하지만 딸아이의 생사를 몰랐다 겨우 알게 되었을 땐 자신은 그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려는 부분이 보였다. 사소한 것부터 욕망에 이르기까지는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에 오히려 위험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사령관이 숙청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탈출인지 처형을 당하러 가는 것인지 모를 차를 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역사적 주해’에서는 이 이야기가 담긴 테이프가 발견된 장소, 그녀의 이름조차 ‘가부장제적 명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녀가 살았던 시절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탈출해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또 다른 지옥 속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혹은 ‘과거의 거대한 암흑’으로 빨려들어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정확히 해독’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남긴 흔적을 통해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아마도 곧 출간 될 후속작『증언들』에서 그 흔적을 더 비참하게, 낱낱이 목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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