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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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8시 28분. 둘째가 어린이집 차량을 8시 35분에 타야 하는데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이들이 놀라 일어나고, 그때부터 정신 나간 여자처럼 준비했다. 18kg이 넘는 둘째를 안고 달리면서 왜 알람소리를 못 들었는지 후회를 해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알람을 더 촘촘히 맞추는 수밖에. 그렇게 아이 둘을 보내고 기력이 딸려 멍 때리며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따끔거리는 목을 달래려 아침부터 컵라면을 먹고, 집안일을 했다. 어제 개켜둔 빨래 정리부터 물건들을 제자리 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왜 물건들은 손대는 순간 제자리에 돌아가지 못할까? 어이없는 한탄을 하며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특별할 것 없지만 나의 일상은 이렇게 오늘도 돌아가고 있다.


요즘은 똑같이 그리기보다는 나라면 이런 소재를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까 하는 생각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 18쪽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을 재미있게 읽어서 저자의 에세이가 가미 된 후속작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무척 궁금했다. 역시나 재미있게 읽었고, 그림 그리는 ‘키크니’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다. 어쩌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프리랜서의 삶, 가족, 우정, 먹는 것, 저자의 등치(?) 같은 것을 세세히 알다 보니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오늘 아침에 일을 주절이주절이 떠들어봤다. 저자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까’에 고심했겠지만 나는 타인의 일상에 더불어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기억해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상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는 게 뭔지 모르지만 든든해 보였다.

어릴 적부터 가사보다 멜로디가 좋아 음악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저릿함을 느끼게 하는 가사도 있었지만, 어릴 때는 가사의 뜻도 잘 몰랐기 때문에 주로 멜로디에 심취했다. 내 상황에 멜로디는 이입하는 재미가 있었다. 67쪽

완전 내 이야기 같았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도 나는 가사의 뜻을 모르고 여전히 멜로디에 심취한다는 점이다. 철저히 멜로디 위주다 보니 한 소절만 듣고도 반해 음반을 사거나(나머지 곡이 다 별로인 경우 허다), 수백 번을 반복해서 들을 때도 있었다. 주로 외국곡이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사를 찾아보고 놀란 적도 많았지만 내 귀에 확 꽂히는 멜로디가 주는 매력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데 이 구절을 읽고 정말 너무 공감이 가서 마음이 후련할 정도였다. ‘남보다 특이한 상상을, 그것도 아주 길게 하고 있’다며 한탄을 하지만 정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전작을 읽을 때는 투박하게 느껴졌던 그림체가 이번에는 뭔가 정리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네 컷 만화의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말풍선의 내용도 많아지고 익숙한 형식이어서 그런지 훨씬 더 재미있었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아 이름처럼 키 큰(키가 커서 ‘키크니’) 사람이 들려주는 이런저런 얘기 같았다. 이런 책을 만나면 늘 그렇듯 별 볼일 없는 나의 일상이, 무탈한 나의 하루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나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감사하게 된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우여곡절도 많지만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게 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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