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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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오랫동안 미뤄둔 이유는 단순했다. 현실을 너무나 잘 반영해 81년생인 내가 읽으면 우울할 것 같아서였다. 그건 내 독서의 방향과 반대다. 우울하단 이유로 현실을 너무 잘 드러내는 책은 대놓고 피하고, 그래서 고전을 더 좋아하고 가까이 한다. 결국배경만 다를 뿐, 고전도 현재와 다를 바 없는데도 시간적 배경이 주는 차이에 안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우울한 게 아니라 짜증이 나서 당황스러웠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촘촘히 올라와버렸기 때문이다.

 

 

셔츠 안에 목둘레와 진동이 둥그런 전형적인 흰색 러닝셔츠를 반드시 입어야했다. 끈나시도 안 됐고, 면티도 안 됐고, 색이 있거나 레이스가 있는 것도 안 됐고, 브래지어만 입는 것은 절대절대 안 됐다. 54쪽

 

아직도 종종 꿈을 꾼다. 고등학생인 나는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는데 교문 앞을 지키는 선도부가 보이는 순간부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교복 안에 흰색 러닝셔츠를 안 입고 온 것이다. 그렇게 당황하다 깨면 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9년이나 되었는데도 이런 꿈을 꾸는 이유는 뭘까? 여고라서 오히려 남자를 더 찾기 힘든 학교에서 왜 그렇게 복장규정이 심했던 걸까? 학교 밖을 돌아다니는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이들의 시선을 지켜야했기 때문일까? 이런 짜증부터 중학교까지 항상 남자아이들이 1번부터 번호가 부여되는 것들, 남자에게 당하는 부당한 시선과 희롱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했던 시간들이 모조리 다 짜증이 났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65쪽)’는 말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녀가 항상 동등하지 못한 시선을 ‘차곡차곡’ 인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145쪽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경단녀가 된 후 육마만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세 살 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는 둥 아이들이 혼자 있는 게 짠하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놀고 싶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그리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해방감을 느꼈고, 그렇게 바라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면서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스스로 ‘된장녀인가?’ 되뇌며, 갓난아이를 제대로 안고 있지 않은 엄마들을 보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도 조언인지, 오지랖인지, 욕인지 모를 온갖 충고들이 기껍지 않았으면서도 어느 순간 나도 똑같이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이중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149쪽

 

온갖 감정들이 솟구쳤다 사라졌다. 남녀평등에 분노가 일고, 답 없는 질문들을 던지다가도 결혼, 출산, 육아 문제만 나오면 어느 입장에서도 줏대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침울해진다. 육아에 전혀 소질이 없는 나를 인정하고, 그 와중에 내 삶을 들이밀면 뭔가 미안하고, 무엇 하나 야무지게 잘하는 것 없는 내 모습에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적성에 맞고 육아를 하면서 시간 활용을 잘 할 수 있는 현재의 내 직업이 소설에 언급된 것처럼 괜히 떠밀리듯 하는 일처럼 느껴졌고(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절대 아니다), 김지영이란 인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와중에 나는 무기력해져버렸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내가 드러났다 사라졌고, 용기가 불끈 솟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꾸 주변의 여성으로 빙의 되는 김지영 씨. 이 이야기는 김지영 씨를 상담하는 의사가 정리했다. 해리장해를 의심했다가,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고 판단하지만 이내 자신의 진단이 성급했다고 말하는 의사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뜻’으로 말한다. 짧게 자신보다 공부를 잘했던 아내가 결국 교수를 포기한 이유도 육아 때문이었다고 말하듯이 김지영 씨를 이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임신 때문에 회사를 관둔 유능한 여직원을 보면서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는 말에 뜨악하고 말았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이지, 타인을 쉽게 판단할 여지가 아무것도 없음에도 나를 비롯해 누구나 저지르고 있는 일이다. 때론 그 무례함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 속의 김지영 씨는 분명 내 곁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책장을 열고 덮어버리자 김지영 씨는 다시 책장에 갇혀 버린 것 같다. 양성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여성이라는 편견 속에, 사회가 부여하는 여성의 자리에 혹은 내 스스로 규정지어버리는 여성이라는 틀 속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것 같다. 김지영의 잃어버린 목소리, 그 해결책은 김지영 혼자서 찾을 수 없다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김지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여성학자 김고연주 씨의 말이 분명 묵직한데도 묵직하게 전해오지 않는다. 이미 고민도 하기 전에 진 것 같다. 싸워보지도 못한 세력에 기가 눌리고 넉다운 되어버린 기분. 현재의 나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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