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이름을 보고 '보통이 아니다'라는 말로 농담을 많이 했었다.

외국 이름이 주는 발음에 말장난을 한 것인데 말이 씨가 된다고 책을 조금 읽고는 정말 '보통이 아니네' 라고 진지하게 되뇌이게 되었다.

문체에 홀딱 반한것도 반한거지만 책의 얇음에 약간의 만만함이 있었는데 잠시 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공백을 뛰어넘는 듯한 찝찜함에 다시 보통을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다 왠지 모를 반듯함이 묻어 나오는 분위기라 책 읽는 자세도 반듯해지고 천천히 음미 하면서 정독하게 되었다.

짧은 책이였지만 보통이 말했던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p.126)' 감정이 잔잔하게 밀려 들었다.

무릎을 딱 치며 흥분하는 것은 아니였지만 공감은 하되 깊이 생각해 보는 그런 것이였다.

 

첫장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호퍼의 그림이 주는 분위기와 메세지는 내가 호퍼의 그림을 그냥 지나쳤던 무심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호퍼 그림을 본 기억을 끌어당겨 주는 기억의 회귀였다. 나는 철저히 그 그림속의 외로운 여행자들이 되었고 호퍼가 만들어 내는 그림속의 분위기를 본 적이 많아서 푹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통의 일상은 단순하면서도 특별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 가는 것이 지겨움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따라 그 이면을 얼마든지 들여다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보통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 특별함, 잔잔함이 묻어나 깊숙이 빠져들었다.

집중력을 요한다고 해서 어렵게 말을 꼬는 것도 아니고 젠체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모습까지 보여주어 친근감이 묻어 나기도 했다.

 

내용은 짧지만 깊이는 결코 얕다고 할 수 없는 9편의 에세이는 단박에 보통의 매력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한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을 때 '사랑'이라는 단어와 저자의 인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보통의 책을 처음 접하고 나니 다른 작품을 완독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작가의 책을 여러권 읽는다는 것은 그 작가와의 첫 만남도 무척 중요한데 보통과의 만남은 인상적이였다.

그 인상적인 모습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첫번째로 꼽고 싶은 것은 일상의 친숙함이라 말하고 싶다. 보통이 외국인이라서 그의 일상과 나의 일상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기본적인 삶의 양상은 크게 어긋나지 않기에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보다 나의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좋았다.

책을 읽는 깊은 밤이면 밤대로, 이른 아침이면 이른 아침대로 어느 분위기에나 흡수되는 보통의 글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있게 만들었다.

 

또한, 보통의 글에서는 외로움과 고독이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기분이 들때 공항을 가보라는 저자의 기발함에 그럴 틈이 없었던 것이다.

비행기라고 해봐야 제주도를 오갈 때 타본 국내선이 전부여서 공항의 독특한 분위기를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로 날아간다는 상상을 하면 비행기 안에서의 묘한 기분을 일시에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기분은 비단 이런 상상력 뿐만은 아니겠지만 보통식의 외로움을 만끽하는 방법들이 유쾌해 보였다. 말 한마디 붙여 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무수한 공상만 남겨 놓은 채 다음역에서 내려버린 그녀를 보며 마음 아파하더라도 그에겐 그것이 침울 하지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기에 보통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나, 혹은 그의 글과 나의 내면에서는 처음부터 벽이 존재하지 않기에 허물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였을거라 생각한다.

 

그의 생각, 그의 판단, 그의 말하기가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듯이 그의 글을 통한 나의 주변 살피기가 나를 되짚어 보는 것은 소소하면서도 특별했다.

책을 마주하고 있으면서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특별해 지는 책, 보통과 나의 만남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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