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놀이공원이다 - 두근두근, 다시 인터뷰를 위하여
지승호 지음 / 싱긋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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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타인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들이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점점 더 지옥으로 이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에게는 내가 바로 타인일 테니까요. _서문


매일 타인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공감과 관심이 늘 부족함을 느낀다. 나를 다독이고 하루를 보내는데 정신이 팔려 정작 관계에 대해 소홀할 때가 많은데 결코 녹록치 않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묶은 이 책을 보며 살짝 긴장했다. 저자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이 ‘마치 놀이공원에 가기 전 그곳에서 친구와 재미있게 놀고 있는 저 자신을 상상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터뷰 하는 과정은 놀이공원에서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 함께 놀 때는 그 사람을 파악해보는 것도 필요하고, 놀이를 이끌어가는 역량도 필요하다. 인터뷰어와 인터뷰 대상의 간극을 가늠해보며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혐오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어요. 41쪽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 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 가설을 탐구하는 학문’인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 김승섭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세계를 들여다 본 기분이었다. 혹은 이미 익숙하지만 공감할 수 없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원래 그런 것’이라며 치부해버렸던 사회적 약자(나도 언제라도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나도 저런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 아무렇지 않게 관념이 형성되어버리는 것이 더 무서웠다. ‘사회적 약자들의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벗어난 이들을 약자로 취급하지 않는’ 생각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과연 그런 이미지와 틀은 누가 형성시킨 것일까?

반면 ‘진실은 폭력보다 강하’다며, ‘무너져 버린 내 자신을 일으키는 것이, 나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했’다며 세계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선정되기도 했던 강용주 의사의 삶을 보면서 오랫동안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분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으로 인해 지옥을 경험하고 ‘나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분 앞에서 인간의 이기주의와 계속 부딪혔다. ‘인간의 가장 큰 휴머니즘을 아홉 살짜리한테서 배’웠다며, 북한을 탈출해 2002년 남한에 입국한 주성하 기자의 인터뷰도 그랬다. ‘재능이 없다는 것, 실력이 없다는 것을 안 들키려고 어떻게든 성실하게 준비’한다는 강원국 작가의 말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방향을 잡고 위안을 받았으면서도,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의미에서 시사 하는 바가 컸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양성 평등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어서인지 상사의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후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긴 최초의 여성’ 이은의 변호사와 ‘2018년 대한민국을 온통 뒤흔든 미투 운동의 발화점’이 되었던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가 특히 인상 깊었다. 이은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며 우리사회의 다양한 부분에 실전 담론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자신이 당했던 성추행 사실을 올려 검찰 내에선 아예 ‘미친년’으로 불리고 있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답답함을 가장 많이 느꼈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검찰,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검찰’이 되어야 하며,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배당 시스템 및 인사원칙을 비롯해 검찰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더더욱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내가 아닌 남의 고통과 입장을 이해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인터뷰집의 특성상 글이 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상대방의 억양이나 눈빛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도로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부분을 감안하면서 읽되, 모든 인터뷰에 공감과 내 생각을 전환하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주장이 확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지, 삶의 방향과 생각의 변화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 안에서 두루뭉술했던 관념들이 또렷하게 정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 시간을 쪼개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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