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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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리는 이런 복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이들이 왜 그토록 많은가? 78쪽

 

너무 참담하다. 책을 읽는 내내 참담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계속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내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질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면을 지배했던 물질에 대한 욕심, 내 안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불평들이 부끄럽다 못해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어쩌면 며칠이 지나고 이 마음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 허리와 목의 통증도 잊은 채 꼼짝 앉고 이 책을 덮고 나니 세 시간이 지나 있었고, 새벽 세시 반이었다. 내 안에 맴도는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 잠들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이 마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무기력한 나로 돌아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도망쳤던 일을 모두 용서해 주십시오! 92쪽

 

나는 여전히 이들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하나님이 수많은 이들 중에서 나를 자녀 삼아 주시고, 안락한 생활 속에서 살게 해 주신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들,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은 다른 임무를 띤 누군가가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얄팍한 헌금으로 어느 정도는 일조하고 있다는 자만감이 너무 창피했다. 분명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아니, 어떻게든 외면하고 있던 영혼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한 충격이 더 참담했다. 왜 그럴까? 내가 받은 복음은 왜 모두에게 닿지 않았으며, 복음의 뜻을 제대로 알았다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나는 왜 가난한 이들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쳤을까?

 

다시 말해, 육체적 필요도 중요하지만 이 장례 현장은 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때가 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 후의 상황이야말로 진정으로 중요하다. (…) 그리고 이것은 지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중요하다. 108쪽

 

약이 없어 눈을 잃고, 가족과 이웃의 떼죽음을 목격하고, 돈 때문에 인신매매로 팔려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어린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가 지금껏 외면한 사람들만 같았다. 사람이 죽으면 승려가 사지를 잘라 몸을 조각내면 독수리가 와서 시신을 먹는다. 이런 장례의식 천장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영혼 구원이 중요함을 느낀다. 또한 히말라야 등반을 하면서 끊임없이 육체적 필요와 영적인 필요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두 필요는 적절히 이뤄져야 하고 그럼에도 영혼의 구원 없이 육체적 필요만을 추구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옥 같은 현실을 보며 ‘일시적인 육체적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영원한 고통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말이 그저 잔인하지 않게 들리지 않길 바랐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이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와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136쪽

 

그럼에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건 저자나 나나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인신매매범을 쫓아가 아이들을 구해내고 싶었고, 큰 병이 아닌데도 약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이건 순간적으로 드는 일회성 생각이 아닐까? 내일이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래놓고 생색내고 나의 안락함으로 젖어드는 건 아닐까? 내면이 너무 어지러웠고, 혼란스러웠고 엄청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 안의 이런 상태를 바꾸어야만 한다.’고 했다. ‘눈앞의 절박한 상황을 보고’ 지나치지 않게 나의 상태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이다.

 

저자를 히말라야 트레킹에 초대한 애런은 우연히 친구들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게 된 첫 날 휴게소에서 인신매매범을 마주치고 그대로 산을 내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특별한 역사를 경험하고 20여 년 동안 그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런처럼 뜻을 품고 히말라야로 들어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곳 주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담함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감사만 하고 내 목숨과 재산을 나 자신만을 위해 움켜쥔다면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과연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가?’ 229쪽

 

하나님께 드렸던 내 기도들이 너무 부끄러웠다. 오로지 내 안위, 내 가족, 평안함만을 위해 기도하고 던지듯 나머지 것들에 대한 기도를 드렸던 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히말라야로 갈 수 없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깊은 고민 끝에 내게 가장 큰 어려움과 고민과 번뇌를 안겨주는 ‘물질’의 쓰임을 다시 생각해보는 게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임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곳에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당신의 삶을 계획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원제 ‘Something Needs to Change'의 의미를 부디 잊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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