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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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참 많은 책이다. 19년 전에 선물 받았었고, 이 책을 선물한 이와 이미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다. 책머리에 새겨진 날짜의 글씨체만 보고도 누가 주었는지를 알았고,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새삼 떠올라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미화된 기억일지라도 그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과거의 일일뿐이므로 이 책에 담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뜨뜻해졌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강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은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나는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11쪽

나 역시 강하지 않기에 지금껏 ‘무엇이든’이 아니라 주어진 것들을 겨우겨우 헤쳐 온 기분이 든다. 그렇게 헤쳐 온 과거를 돌아보면 그저 어리둥절하다. 내게 이런 일들도 있었구나,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들이 솟구치면서도 나는 절대 강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양한 범위에서의 선택보다는 주어진 것들 틈바구니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 선택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도 나의 오랜 기억 속에 자리하고 희미하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후에야 불쑥 꺼내들었을 땐 완전히 다른 소설로 다가왔다.

그 사람은, 나의 미카엘은 회색빛이고 자제심이 강했다. 49쪽

대학교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한나를 붙잡아 준 게 미카엘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지질학을 공부하고 있는 미카엘과 문학을 공부하는 한나의 만남은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세세하게 서로를 알고 난 뒤에 결혼을 한 게 아니라 결혼생활을 통해 서로를 알아갔고 한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 온 임신, 학업중단, 출산 그리고 망상과 상상들이 이어지는 날들 속에서 한나는 결코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마음이 쏠리는 인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미카엘의 자제심이 돋보일 정도로, 생활비를 몽땅 옷을 사는데 써버리거나 새 아파트로 갈 계획이 있음에도 준비하지 못하고 아들과 유대감을 쌓지 못하는 모습들이 불안해 보였다. 미카엘은 그런 한나를 묵묵히 지켜주며 공부하느라 피로에 감에 쌓여 있지만 가정과 학업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들은 마치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자리에 앉게 된 두 명의 여행자들 같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고, 예절이라는 관습을 지켜야 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아는 자신들의 사이를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예절바르고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고. 73쪽

그럼에도 한나를 비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짜증과 우울, 후회 때문이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내 몸의 변화, 이 세상에 생명을 내 놓아야하는 두려움, 육아의 피로 가운데 나의 존재감은 점점 사라지고 이 모든 상황들이 그저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나처럼 내면의 망상으로 대부분 감정처리를 한 것이 아니라 온갖 짜증과 무기력감을 쏟아낸 것 정도일까? 한나의 들쑥날쑥한 감정변화를 보며 미카엘과 잘 맞는 배우자가 아니라는 사실 뒤에, 한나는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힘겨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 무례한 남자들의 뻔뻔한 시선에 답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간에 대처하고 있다. 눈을 돌리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차가운 경멸의 미소를 얼굴에 띤다. 겁먹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251쪽

한나의 감정들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무의미하고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망상과 현실이 얽혀있다. 미카엘에 대한 사랑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완전한 이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지만 다정하게 들리지 않는 ‘나의 미카엘’이 부디 다른 의미로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나의 남편, 나의 아이들 혹은 수많은 ‘나의’로 시작하는 것들에게 긍정적인 의미의 현재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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