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루몽 1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이젠 독자들도 어느 정도 번역의 질을 눈치챌 수 있는 것 같다.
굳이 머릿말에 번역의 노고를 말하지 않아도 또는 오역에 대한 발언이 없어도 독자는 이미 책을 읽으면서 온 감감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도 독자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번역자는 책과 독자간의 다리 역활을 제대로 못해준 셈이 되고 만다. 그것은 번역자들에겐 치욕이요 독자들에겐 원활한 소통이 되어 주지 못해 명작에 대한 옳지 않은 편견을 남겨주는 효과만 낳을 뿐이다.
나 또한 10대 때부터 느껴온 오역의 불쾌함, 번역의 난해함을 어느 정도 경험해 본 터라 이렇듯 장황하게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홍루몽은 번역에 대해서 거론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번역자의 노고가 느껴질 뿐만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번역자의 애정이 고스란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우선 고전이라는데서 오는 고리타분함이 없었고 거기다가 재미까지 더해주어 시간의 격차를 뛰어넘는 효과까지 안겨주고 있었다. 이러한 느낌을 갖는데에 번역의 도움이 왜 없었겠는가. 시간과 문화의 격차를 메꿔주는 훌륭한 번역이 있었기에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노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홍루몽의 처음 시작은 '여와보천'이라는 신화에서 출발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금릉의 가씨 집안으로 옮겨 가면서 흥미를 더해가는 이야기다.
이 가씨 집안의 스케일이 워낙 클 뿐더러 등장 인물도 많아 인물사전을 들춰가며 파악을 해야 하지만 주요 인물들을 따라 흐름만 놓치지 않으면 12권까지의 읽힘도 무난할 거라 생각한다. 등장인물이 많아도 새로운 인물이 나올때마다 설명과 암시가 이어지기 때문에 주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무엇보다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통해 그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가보옥만 보더라도 출생부터가 범상치 않다.
신화 속 옥구슬을 입에 물고 태어난 인물로써 아직 어린 나이여서 천방지축의 모습만 보여 주지만 그가 가지는 생각, 행동만으로 이야기의 양상이 달라지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씨 집안의 인물들과 내력만으로도 실로 거대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를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가씨 집안을 통해서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음은 물론 인생의 유,무상함을 느낄 수 있기에 포괄적인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등장 인물들의 세세함 속에서 작은 중국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계기는 예전에 읽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때문이였다.
분명 중국은 거대한 나라이긴 하지만 정작 중국에 대해서 자세히 모른채 멋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견문록을 통해서 생동감 있는 중국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홍루몽에서 드러나는 소소한 것들을 이질감으로 대했을 터인데 저런 것들이 바로 그 당시 그들의 문화며 기질이라고 생각하자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나 작은 중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가씨 집안의 모습은 그 안에서의 갇힘은 아니였다.
보옥을 깨닫게 하고자 경환선녀를 통해 꿈 속에서 은우지정을 들려주지만 정작 보옥은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커야 깨달음이 크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희비는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옥은 아직 정체되어 있는 상태지만 이 깨달음을 느낄날이 분명 올 것이기에 보옥의 인생은 가씨 집안의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보옥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바로 가옥의 집안은 넓디넓은 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고, 꿈속에서 본 태허환경을 노닐 수도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처럼 홍루몽 1권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가씨 집안의 운명과 주요 인물들의 인생 앞에서 단순한 소설적인 재미만을 느꼈던 것은 아니였다. 그 안에는 수 많은 가능성이 녹아 있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으며 시대의 동떨어짐을 떠나 내가 접목시킬 수 있는 깨달음도 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재미이며 책을 통한 즐거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이러한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써 무척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