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에 가는 길 김용택 시 그림책
김용택 시, 주리 그림 / 바우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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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와~’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버스에서 내리고 있고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풍경이 너무 예뻤다. 7번을 달고 있는 버스에는 행선지가 할머니 집, 우리 집 밖에 없다. 그런 아이를 나비 날개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가 반겨주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갈 거란 예감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산벚꽃 만큼이나 예쁜 진달래꽃과 살구꽃 골목을 지나면 할머니 집이 나온다. 아이는 혼자 버스를 타고 할머니 집에 온 모양인데, 대문을 열자 길동무였던 남자 아이는 나비로 변하고 할머니가 팔을 벌려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가 입고 계신 바지를 보며 친정 엄마가 흔히 입는 기하학적인 무늬와 비슷해서 괜히 더 정겨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꽃을 실컷 보면서 걸어온 아이는 자신이 할머니에게 ‘어여쁜 꽃이 됩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뭉클했다. 할머니에겐 시골길에 예쁘게 핀 어떤 꽃보다 손주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여름, 가을, 겨울 모두 할머니 집을 찾아간다. 할머니 집으로 갈 때마다 길동무도 개구리, 허수아비, 두루미로 바뀌고, 그 사이 아이는 키도 좀 큰 것 같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림만 봐도 괜히 마음이 푸근해졌다. 섬세히 관찰하고 그렸거나, 정말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이 그린 것처럼 계절이 또렷하게 느껴지도록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할머니 집에 널린 수건에 글씨며, 할머니가 입고 있는 옷들이 그랬다. 정말 시골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너무 섬세하게 그려놓아서 마치 내가 엄마를 찾아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한 탓에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시골집에 갔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20분 정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다 볼 수 있었고(아쉽게 이 그림책처럼 꽃은 별로 없었고 온통 풀, 나무뿐이었다), 밤에는 또 얼마나 무서운지 느낌으로 알고 있다. 시골의 밤은 도시의 밤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여서 혼자서 시골 밤길을 걷는다는 건 나로서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밤에는 풍경이고 뭐고 집의 불빛을 찾아 냅다 뛰어가기 바빴다. 그렇게 도착한 집에 엄마가 나를 어떻게 반겼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안도감에 늘 마음이 놓였었다.

그래서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뺏기기도 했지만 아이가 올 때마다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며 ‘내새끼’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혼자서 생활할 때 사랑하는 손주가 찾아오는 기분을 할머니의 동작만 봐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맨발로 뛰어나오고, 눈 오는 날에는 걱정되었는지 밖에서 맞이하기도 한다. 아이는 할머니 집 가는 길에 무엇을 더 기억하게 될까?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아니면 길동무? 다른 것보다 할머니가 늘 반갑게 맞이해주던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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