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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때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읽고 비둘기를 읽었다.
그 당시 나의 독서 수준으로는 쥐스킨트 작품속 주인공들이 충분히 괴장쩍이여서 거기서 쥐스킨트 작품 행보는 멈췄다. 그러다 20대 초반에 제목에 이끌려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또 멈춰버리고 향수를 읽고서야 쥐스킨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향수'라는 작품의 강렬함도 있었겠지만 그 동안 어떻게든 쥐스킨트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쥐스킨트식의 결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다시 쥐스킨트의 작품을 뒤적거리게 되었고 늘상 찜해두던 콘트라베이스를 이제 읽게 된 것이다.
예전에 드럼레슨을 받으러 갔다가 레슨 선생님의 음반중에 독특한 음반을 발견한적이 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6명이 낸 음반인데 특이하게도 콘트라베이스로 여러가지 소리를 내며 콘트라베이스로만 연주를 한다.
무척 궁금해서 그 음반을 기억했다가 몇년뒤에 그 음반을 샀는데 프랑스의 콘트라베이스 주자로 이루어진 그룹 'L'orchestre de Contrebasses(로케스트르 드 콩트러바쓰)의 'Bass,Bass,Bass,Bass,Bass and Bass.'란 제목의 음반이였다.(오.. 놀라운 사실은 독후감을 쓰면서 이 음반을 들으며 쓰려고 앨범자켓을 열어보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의 구절이 들어 있는게 아닌가... 오옷! 놀랍도다!)
그 당시에는 이런 장르는 듣지 않아 따분해서 처박아 두고 말았는데 요즘 꺼내서 들어보니 괜찮았다.(나이가 들면 식성뿐만 아니라 음감도 변한 다는걸 느끼며 산다..^^)
여튼 콘트라베이스를 읽기 전에 이 음반을 통해 조금은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에 대해 생각이 열려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장황스러워졌다.
그러나 모노 드라마 형식의 글로 마주한 콘트라베이스는 또다른 느낌이였다. 이 책에 나오는 국립오케스트라 연주자인 예술가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콘트라베이스는 그의 내면, 삶에 대한 조화를 훌륭히 그려내고 있다. (오히려 고등학교때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예술성과 취약성을 감춤없이 모두 드러내 보이고 자신과 얽혀있는 콘트라베이스 이야기며 성악가 세라를 사랑하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고 뱉어낸다. 콘트라베이스를 얘기하자면 음악 얘기가 빠지지 않을 수 없는데 특히 오페라 얘기가 많이 나온 부분은 재미나게 읽었다. 작년에 오페라에 관심이 가서 오페라에 대한 정보를 캐내면서 음반도 사보고 인터넷으로감상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조금 알아뒀던 정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도움이 되었다.(당연히 그 오페라들로 인해 콘트라베이스를 이해한다는 사실과는 먼 것들이지만...) 그래서 그런 예술적인 부분들만 나온다 생각했는데 자신의 직업, 인생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에게 어떻게 콘트라베이스 이야기만 있겠는가..
자신의 사생활이며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 놓을 때는 더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세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러나 자신은 눈에 띄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라는 사실안에서 용기가 있으면 공연중에 세라 이름을 부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번역가의 말마따나 이야기 소재거리로는 참으로 소박한 주제를 이렇듯 떡하니 읽을거리고 만들어내는 쥐스킨트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어느새 그 안에 빠져들어 온통 콘트라베이스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는 또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것 또한 놀라웠다.
콘트라베이스를 잘 아는 듯... 연주는 못해도 콘트라베이스를 만나게 되면 '콘트라베이스다'라고 한마디 밖에 외치지 못할지언정 어느새 친굿함이 배어나와 버렸다.
또한 예술가이자 한 남자의 방에서 펼쳐지는 작으면서도 큰 공간안에서의 그의 존재는 그다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조차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평범하고 비활동적으로 살아가는 나라는 가까운 보기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를 통해 나의 존재가 더 작아지거나 소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갖게 되었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의 쓸씀함도 콘트라베이스 음악과 콘트라베이스의 책 한권 안에서 범접할 수 없는 자유가 느껴진다.
삶의 방식이 모두 다르듯 만족감 또한 다르다.
그 만족감을 책과 음악이라는 데에서 찾아가고 있지만 콘트라베이스라는 또다른 매개체에서 오는 개별적인 만족감도 상당히 진취적이다.
그럭저럭 잘 꾸려오지 않았냐는 평소와는 반대되는 개념속의 나를 돌아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