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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 바닷마을 다이어리 9 - 완결 ㅣ 바닷마을 다이어리 9
요시다 아키미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부러 아꼈다. 완결을 알았기에 읽을 만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름대로 경건한 마음을 취한 셈인데 그도 그럴 것이 약 8년 전 처음으로 입소문을 듣고 이 만화책을 읽었다. 그 때만 해도 1~2년에 한 권씩 나올 거라 생각도 못했고, 생각보다 그 시간이 빨랐다는 기분이 들 줄도 예상 못했다. 일 년에 한 권이라도 좋으니 계속 이 이야기가 이어갈 수 있길 바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배다른 동생 스즈에게 함께 살자고 건넨 한 마디 때문에 카마쿠라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따뜻한 이야기가 좋았다. 그리고 줄거리마저 희미해지게 띄엄띄엄 출간되는 책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런 책이었으니 마지막 권이 나에게 ‘읽어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출간부터 완결까지 꼭 10년이 걸린 책이자 내가 유일하게 모은 만화책. 보내기 싫은 심정도 충분했다. 그래서 느긋하게 기다리다 지난 주 금요일 집안일을 멀끔히 해놓고 배를 깔고 누워 정독했다. 오히려 만화책을 읽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나는(만화책이 익숙하지 않아서)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또 언젠가 때를 기다려 1권부터 9권까지 정주행을 하리라 다짐했다. 그런 날 말이다. 마음이 한없이 울적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아무것도 위로가 되질 않을 때 무심코 이 만화를 꺼내기로 말이다.
가마쿠라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엔 별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치카와 하마다 산조의 아이가 태어나려고 했고, 하마다는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스즈는 축구 특기생으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사치와 요시노 언니의 연애도 진전이 있었고, 후타를 비롯한 친구들도 나름대로 고등학교 준비를 한다. 후타와 스즈와의 관계는 변함이 없을 거라 믿었지만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이 때론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얼마든지 이야기들이 이어져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카마쿠라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 시간들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 당연한 건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책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치카의 분가도 괜히 아쉬웠고, 앞으로 누군가는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더라도 이 시간들이 잊히는 게 싫었다. 마치 내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뒤에 어렸던 현재를 아쉬워하는 것처럼 변화를 인정해야 하는 사실을 할 수만 있다면 막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당연한건 데도 나는 내 욕심껏 그들을 멈추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데 얽혀있지만 각자의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가운데 “스즈와 카즈키의 ‘그후’ 번외편”을 보고 모든 게 과거의 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까지나 막내일 것 같던 스즈가 언니들을 처음 만났던 고향으로 돌아가 이복동생을 만나고, 그곳에서 결혼 소식을 전한 일. 그리고 그 사람이 화려한 양산을 오래전부터 이상하다고 말했다는 것에서 남편 될 사람이 누군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꼭 ‘그’라고 믿고 싶다). 혼자서 ‘헉!’ 하고 놀라면서도 어쩌면 스즈도 현재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아이를 키우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자 공감각이 더뎌졌다. 여전히 내 기억과 추억은 카마쿠라의 언니들 틈바구니에서 씩씩하게 지내던 스즈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있는데, 스즈도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니 기분이 묘해졌다.
어쩌면 이게 누구나 꿈꾸는 평범한 삶인지도 모른다. 흐름에 삶을 맡기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얽혀 들어가면서 온갖 일들을 겪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일. 그게 행복이고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평범한 삶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만화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만화에 문외한인 내가 이 만화를 우연히 만나고, 오랜 시간 기다림과 함께 한 시간까지 행복했다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아쉽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가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하고 있다 여기면 현실에서 나의 행복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여겨본다. 마지막 책의 부제처럼 ‘다녀올게’ 하고 말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일상. 그 일상이 오늘따라 굉장히 감사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