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삼국지 1 - 누구나 쉽게 시작하고, 모두가 빠져드는 이야기 설민석의 삼국지 1
설민석 지음 / 세계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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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다. 내가 삼국지를 읽다니! 그리고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다니! 지인들에게 너무 재미있다고 계속 소문을 내고 있을 만큼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웬만한 책이 다 있다고 여기는 내 서재에는 이미 13년 전에『이문열의 삼국지』를 구입해 뒀다. 1권은커녕 초반 50쪽도 펼치지 못하고 묵힌 지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다른 번역본 세트를 들였다. 그런데도 시작하지도 못했고, 솔직히 언제 읽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들이 닥친『설민석의 삼국지』를 읽고 뒤늦은 감탄을 일삼고 있다.


모든 독자분들이 삼국지에 관심을 가지고 삼국지를 사랑하게 만드는 입문서 역할을 하고자 집필되었습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하여 서술되었지만, 원전의 방대한 내용, 복잡한 전개 과정, 많은 인물들과 생소한 지명까지 쉽게 풀어내려 노력했습니다. 422쪽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읽고 원전 삼국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등장인물이 천 명이나 되어 시작도 하기 힘든데 입문서 역할로 삼국지에 관심을 갖게 해 준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웠다. 너무나 유명한 인물들과 사자성어, 전투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으니 한데 얽혀 ‘난 삼국지에 대해 잘 몰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고, 삼국지가 쓰인 역사적 배경은 물론 지리를 인지하면서 흐름을 잡을 수 있었다. 사자성어 삼고초려에 대한 배경도 ‘술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라고 말한 관우와 조조의 사건도 알게 되어서 속이 후련했다. 워낙 방대해서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왜 저들이 원수지간인지, 전략과 전술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드러내는지 짧은 소견으로 느끼는 것들이 엄청났다.

저자가 소설 삼국지라고 밝혔지만 아마 소설로 쭉 이어졌더라면 삼국지에 무지한 나는 아마 많은 부분을 놓치고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과 저자의 해설 그리고 독자가 가질만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줌으로써 삼국지를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이런 구성이 흐름을 끊을 수도 있고 헷갈리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설명이 다음에 이어질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앞서 내용을 다시 언급해 주어서 흐름을 잡아가는데 훨씬 더 용이했다.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져 오래지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_삼국지 첫 문장

달랑 이 책을 읽고 삼국지의 매력을 운운하는 것이 쑥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인간다움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마음을 지키며, 행동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이었다. 황건적의 난을 시작으로 한나라의 어지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과정에서 오로지 애국심으로 뭉친 사람들과 애국심과 사리사욕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 혹은 그저 욕심만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떤 인물과 닮아있는지를 계속 고민했다. 마음은 유비와 관우, 조자룡 같은 인물이 당연하다 여기지만 막상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모면하고, 멀리 내다보지 못한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심을 다해 상황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주변 사람들까지 끌어당기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큰 힘을 가지면 더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려는 우직함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마음만으로, 내 뜻대로만 되는 게 세상이 아님을 알지만 그럼에도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열망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라 여긴다. 삶의 고비마다 찾아오는 어려움과 절망 혹은 즐거움 앞에서 삼국지의 인물들을 보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웠다. 물론 실천까지 이어질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에 왜 열광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삼국지에서 지혜를 얻으려고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결국에는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답게 살다 인간답게 죽고, 내 뜻을 펼치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만큼은 이런 고난을 겪지 않았으며 하는 마음. 이 마음이 ‘내’가 속한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불평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만날 2권과 반드시 완독하기로 다짐한 원전『삼국지』에서 그 의미를 계속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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