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5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서럽다. 그리고 억울하다.

그러나 그것들을 둘 곳이라곤 갇혀버린 내 마음 속 뿐이다.

이제 5권인데 12권까지 읽을 자신이 없다.

내가 알아야 하는 역사라고 해도 나는 그들처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 아니다. 이건 자만이다.

살아갈 자신이란 말은 내게 너무 거창하다.

나는 그들의 삶을 지켜 볼 인내조자 없다.

처음은 읽힘이였지만 단순한 읽힘이 아님을 알기에. 지금 내가 혼란스러워 하며 내 마음에 갇혀버린 분노를 꺼내지 못함을 인지하기에.

 

수많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나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박힌 이미지는 땅을 뺏기고 만주로 떠나는 농부들이다. 떠나는 그들이나 그들을 위로하는 이들이나 찐득 찐득한 서러움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 땅이 얼마나 소중하던가.

땅을 소유하든 소작을 붙이든 그들의 가장 큰 갈망은 땅의 지속이다. 단순히 땅을 갖는다, 꾸린다는 자체가 아닌 땅은 그들의 삶이고 목숨이였다. 단순히 물질이 아닌 땅에 배속된 수많은 것들을 나는 뱉어낼 자신이 없다.

그런 땅을, 그리고 힘겹게나마 소작을 붙여오던 땅을 빼앗겨버렸다. 너무나 허망하게. 그리고 너무나 억울하게.

도저히 살아갈 구멍이라곤 한 뼘도 보이지 않는 고향을 등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에 불길이 솟구친다.

가지 말라고 잡을 수도 잘가라고 담담히 보내줄 수도 없는 또 다른 그들의 처지를 나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

켜켜히 억울함이 쌓인다.

그러면서 그들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형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가 못 견디게 밉다. 어쩌자고 그들은 끈질기게 대항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쩌자고...

그러나 '어쩌자고'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나의 심정을 오히려 그들이 위로한다. 당연한 것일 뿐이라고....

나 하나 하나가 하나의 조선이니 조선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는 큰 포부를 남긴채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땅, 조선을 갈망한다.

 

외국에 대한 동경만 짙어지는 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선을 지켜 주었는데... 그렇게 지킨 조선이 결국 미,쏘의 나눠 먹기에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는데 나는 그들의 땅에 대한 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조선이라는 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이 농사 짓던 땅의 애정과 과연 비교가 될까.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 한스러웠을 것이다.

그들의 피가 조선을 붉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조선을,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다.

그러나 온전히 이런 사람들만 있었다면 나의 분노는 끈끈한 동질감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들과 정반대였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수렁의 늪은 깊고도 질척했다.

가지고 싶기에 무조건 가져야 했던 그들의 욕망을 그들은 무작정 채웠다. 그런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기에. 영원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자신들이 가장 잘 알았으면서도.....

 

늘 이렇듯 상반된 느낌은 책을 읽어감에 따라 더욱 뚜렷해진다.

그래서 책의 상세한 내용이 아닌, 흐름이 아닌, 나의 느낌들을 두서없이 서두 없이 펼쳐 놓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두리뭉실한 느낌들 속에서도 그들의 삶이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는 건 왜일까. 그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땅에서 나는 그다지 갈망하며 살지 않는대도 말이다.

그런 땅을 넘어서 그들의 혼을 물려 받아서가 아닐까....

뼛속에 사무쳐 있던 그들의 한이 피를 통해 내게 온 느낌이다.

그 잠재력이 깨어난 듯한 느낌.....

허황되든, 깊은 상상이든, 허상이든 믿고 싶어지는 전율의 편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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