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스토리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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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와타루가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요어문을 지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왔을때의 약간의 낯섬은 이런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와타루의 엄마가 꾸었던 꿈처럼 와타루의 여행을 분명 같이 목격했음에도 순식간에 현실로 튀어나온 이 느낌.

몽롱하다. 그리고 이 낯섬이 조금은 당황스럽다.

그래서 퇴마의 검의 힘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처럼 잠시 와타루의 여행으로 다시 돌아가보려 한다.

 

미쓰루는 결국 북쪽 제국으로 넘어가 다섯번째 보석을 손에 넣었다. 그의 목적은 보석을 채워 운명의 탑으로 올라가 여신을 만난 후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였으니까.

그러나 그는 다섯번째 보석을 얻는 과정에서(그 전에도 그랬지만..) 커다란 혼란을 일으킨다.

결계로 봉인된 어둠의 거울을 부수고 자신은 보석을 얻었다.

그러나 어둠의 거울에서 나온 마족들로 북쪽도 남쪽도 전쟁터를 만들어 버리고 봉인을 푸는 과정에서 황제가 살고 있는 황도 소레브리아를 폐허로 만들지만 미쓰루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비전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의 최적의 결과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미쓰루가 보석을 얻는 과정에서 비전의 사람들은 미쓰루가 보석을 얻는 과정에서 비전의 사람들은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인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미쓰루의 증오는 깊은 것이다.

현세에서 받은 상처가 벌어져 결국 자신을 망쳐 버리고 만다.

사람기둥의 가능성, 운명의 변화의 여부를 제쳐두고 운명의 탑을 눈앞에 두고 증오로 가득찬 자신의 또다른 모습과 싸우다 미쓰루는 패하고 만다. 그것은 죽음이다.

와타루 또한 증오로 가득찬 자신을 만나지만 자신이 흡수할 수 있는 증오였던 반면 미쓰루는 너무나 컸다.

 

와타루의 마지막 보석도 미쓰루와 동일한 것이기에 와타루는 운명의 탑으로 그리고 여신 앞으로 간다.

자신을 이용하고자 했던 목소리의 정체를 안 후 와타루는 운명의 탑으로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물음을 자연히 알게 될거라는 충고의 의미를 자연히 깨달아간다.

자신의 운명은 곧 자신의 비전인 지금의 비전이라는 것.

그 비전이 무사하지 못한다면 현세를 바꾼 듯 무슨 소용일까.

현세를 바꾼 듯 비전의 파괴와 앞으로 끊임없이 받고 살아야 할 상처와 분노, 질투 같은 감정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와타루는 비전의 평화를 소원한다.

그리고 그는 무사히 여행을 마쳤으므로 현세로 돌아온다.

사람기둥이 선발되는 하르네라도 끝났고 비전의 사람기둥으로 간택된 사람은 만나지만 여행자중의 한명인 사람기둥이 미쓰루일거라는 것은 믿고 싶지 않은채 그는 비전을 나온다.

 

그리고 비전을 여행하기 직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비전은 잊어야 한다.

현세의 삶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자신의 상처받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 억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렇듯 자연스레 혹은 조금은 차분하면서도 당연하게 진행되어지는 결말에 한바탕 꿈을 꾼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와타루의 여행 목적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였지만 여행을 하면서 그 목적을 상실했다라기 보다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될 성숙미와 깨달음을 위한 여행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운명이기도 햇고 그 운명의 변화로 부모님의 운명도 바꾸고자 했던 것이였지만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였다.

비전을 여행하면서 순리를 뛰어넘기 보다는 순리에 따르는 법을 배운 와타루였다.

그 순리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거스렸을때에 어떠한 결과가 오는지 미쓰루를 통해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역시 비전의 평화를 자신의 평화와 연결 시키며 스스로 이겨내겠다는 결으로 현세로 돌아오는 와타루의 결심은 당연함직에도 허무감 또한 없지 않았다.

 

원래도 되돌려 놓는 것.

무형의 것으로 자신을 채우는 커다란 깨달음이지만 조금은 그 돌아봄이 너무 뻔한, 그러나 그래야만 하는 것이기에 아쉬움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쉬운 것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역행 또한 인정하지 않음이다.

그것은 단계를 거치지 않은 뛰어 넘음으로 얻음보다 역효과가 많이 날 것이므로.

그러나 가끔은 억지로라도 그것을 뒤집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현실의 대리만족을 책을 통해 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통쾌하게 뒤집을 수 있다는 것.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싶은 도전 의식.

그것이 와타루와 여행하면서 너무 깊숙히 박혀 있었나보다.

그러나 현실은 말한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만 너의 진실됨을 끌어 내라고 말이다.

그래, 나는 와타루를 통해 그 진실의 파편을 보았으므로 그것을 이제 내가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단지 자신이 좀 없을 뿐. 얼렁 뚱땅 해치우고 싶을 뿐.

대충은 없다. 또한 역시 쉬움도 없는 것이다.

자꾸 길 밖으로 걷고 있는 나를 이제 진실로 끌어 오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와타루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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