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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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씌여진 소설을 손질해서 다시 내 놓았다는 후기를 보니 내가 읽었던 책 속의 주인공들이 과거의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나의 상상의 나래는 펼쳐진다. 야요이와 데츠오는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야오이와 유키노는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지만 금방까지 내 곁에 머물렀던 그들의 미래를 꺼내보려니(그들에겐 현재가 되겠지만)조금은 낯설다.
그래도 뿌듯함이 남도록 그들을 기억하고 싶다. 결국 자신들에게 솔직해 졌으니 하나하나 헤치고 나와 당당하게 맞서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들을 누렸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관계, 사랑에 추구라는 용어를 써서 딱딱해 보이긴 하지만 야요이와 유키노, 데츠오에겐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다. 그래서 절망을 싣기 보다는 추구를 통해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지끔껏 잊어 버리고 억눌렸던 것들이 많았기에, 그런 세월의 흐름 앞에 그들은 방황하고 안절부절 못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들은 분명 힘들어 하고 있었지만 격하거나 극단적일지라도 차분함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며 온전이 그 모든 것들을 전해 주었다고.
 
깊은 밤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감성과 언어는 느끼는 그대로 나의 몸과 뇌리에 박히고 있었다. 유난히 묘사가 많은 밤 하늘과 자연은 답답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고 그들이 찾아야 할 것들은 도심의 복잡함 같을 지라도 여유로움과 단아함으로 묘사되며 다가왔다.
양녀라는 사실보다 이모로 알고 있었던 유키노가 언니라는 것, 남동생 데츠오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변하는 것. 무언의 감정 속에서도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인 채 현실에 충실하고 있기에 내가 느낄 우울함도 없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어 버린 유키노와 야요이의 방황은 내면을 조금씩 갉아먹어 주체할 수 없을 때 집을 나가는 행동을 보이며 안정감을 찾으려 하지만 소원해져 버린 그녀들의 관계가 결국은 돌아가야 할 종점이며 그 사실을 인정해 갈때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을 깨닫는다.야요이에게 데츠오가 그러하듯 이모와 동생을 잃은 것이 아닌 언니와 애인을 스스로 발굴했다고 결론짓 듯 복잡미묘한 상황을 서정적으로 이끌어 간다.
 
그들 앞의 현실은 수 많은 난관부터 떠오르지만 야요이의 결정에서 나는 긍정적인 희망을 보았다.
더이상 집을 나서서 이모집으로(이제는 언니지만) 도피하거나 이모를 찾아 과거의 행적을 뒤질 필요도 없을 것이고 집을 나올지언정 지금 속해 있는 집에서 정체성 혼란도 자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어렴풋이 상상하며 책을 덮으려는 찰나 이미 나온 작품을 수정했다는 후기를 보았으니 어느새 그들은 과거의 인물이 되어 있었고 그들의 현실을 추측할 수 밖에 없는 내가 되어 버렸지만 저자도 수정과 책을 다시 내는 과정에서 그들의 미래와 과거를 그려봤을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시도를 독자들에게 미안해 하고 있었지만 수정 이전의 이야기를 알 수 없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현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의 현재가 내게는 미래일 뿐이라며 긍정적인 추측만 어렴풋이 할 뿐,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거나 이러이러 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은 드러내지 않는다.
결말은 오픈되어 있지만 충분히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야요이가 천천히 더듬어 가던 자신의 기억과 자아처럼 새롭게 펼쳐질 진정한 야요이의 미래에 긍정적인 삶을 살 의지를 보이고 있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현재건 미래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서서히 내 딛는 야요이의 발걸음처럼 조금함도 답답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치하지만 슬픈 예감이 지금껏 야요이를 지배했다면 이제는 기쁜 예감만이 존재해 햇살 가득한 베란다의 따뜻함처럼 혹은 밤의 맑은 공기처럼 상쾌하기를 바랄 뿐이다.
달이 차오르듯 바람이 흘러가듯 야요이가 느꼈던 공허를 안정됨으로 채우고 더이상 잃어 버리지 않기를....... 그 곁에는 데츠오와 유키오가 늘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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