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랭크 밀러 글.그림, 린 발리 채색,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300이라는 숫자와 전쟁을 인식하는 순간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의 300 용사가 생각났다.

하나님의 이끔에 따라 300이라는 숫자로 엄청난 수의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사건.

300을 보는 순간 그 사건이 생각나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지만 기드온의 300용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 보다는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있음에도 도통 흐름을 잡을 수가 없었다.

늘 글씨만 빽빽히 들어찬 책들을 읽고 상세한 설명과 묘사를 접하다 보니 배경 그림 가운데 띄엄 띄엄 들어찬 말풍선의 대화와 설명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였다.

 

책을 덮고도 멍했고 무언가 휩쓸고 지나 갔는데 도통 그 느낌을 적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바다에 빙하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날림으로 읽었던 첫 번째 읽기와는 다르게 공백의 비워짐속에 상상력을 집어 넣고 천천히 보았다.

마치 말풍선들 사이에 다른 이야기가 존재 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어떻게 보면 글씨로 채워진 책들 속에서의 상상력 부족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첫 번째 읽기의 헛점을 인식하고 읽었더니 조금씩 책 속으로 빠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으로 채워졌지만 보통 그림책보다 길고 빽빽한 배경속의 여백이 처음엔 낭비라고 생각되던 것이 두 번째 읽을 때는 무한한 상상속의 실제 공간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니다스 왕과 그들의 군대는 전설이 되었다.

 

불가능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게 더 쉽고 불가능을 뛰어 넘기엔 몇 안되는 가능성을 끌어 모아야 하고 그건 피로한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을 뛰어 넘을 때의 그 만족감 또한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그 불가능을 뛰어 넘고자 할 때 정의감이 살아 있다면 이들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알면서도 맞서는 이들, 맞수가 안되는 상황에서도 불복하지 않고 당당한 그들 그들을 그렇게 불타게 만들었던 건 무엇이였을까.

옳지 않는 것에 복종할 수 없는 스파르타인의 기질이였을까?

무엇이라 뚜렷이 말할 순 없지만 가족을 버리고 지위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고 전쟁을 강행했던 그들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굴욕적인 삶을 선택 하느니 정의로운 죽음을 선택한 그들의 되려 경이로울 뿐이다.

 

도망치지 않는 왕, 그런 왕을 따라 끝까지 싸우는 군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멀리 내가 사는 세계까지 올 필요도 없이 레오니다스에게 복종을 권유했던 오만한 크세르크세스와 탐욕만 일삼는 사제들만 보더라도 절대 그들 앞에 무릎 꿇으며 모욕을 받기는 싫을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전면전을 선택한 것은 어리석다고 얕보고 깔보는 그들에게 우리의 신념은 불타고 있으며 의지는 하늘을 향하고 손에 쥐어진 창은 너희들 가슴을 찌를 것이라는 걸 보여주려 함이 아니였을까.

 

레오니다스가 출전하기 전 딜리오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승리의 소식을 전하라고. 우리는 스파르타 법에 따라 싸우다 죽을터이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라고. 그것은 위대한 행동의 시대, 이성의 시대, 정의의 시대, 법의 시대이고 그것을 지키고자 삼백 명의 스파르타인이 마지막 숨결을 바치게 될 것을 누구나 알 것이라고 레오니다스는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싸우며 의로운 죽음을 향해 갈 뿐이였다.

레오니다스의 말대로 그들의 싸움은 전설이 되고 역사가 되어 그리스인들 사이에 퍼졌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딜리오스는 전쟁을 준비한다. 수수께끼 같던 왕의 승리를 그제서야 인정한 채 레오니다스의 뒤를 이어 정의로운 죽음, 승리의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죽었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서는 늘 살아 있는 것 같다.

이름 모를 용사들이라 할지라도 300이라는 숫자에 감추어진 개인들일지라도 그들에겐 의로움이 남았다. 진정 죽음을 선택하고 상상할 때 이러한 죽음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정의의 총대를 메고 전진하는 사람의 뒤를 따른 적이라도 있는가.

그들 앞에 나의 생명은 한 없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러나 뜨거웠던 그들의 열기는 나의 생명을 비웃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싸웠을 뿐이라고 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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