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의 가정 - 하나님과 동행하는
러셀 무어 지음, 김주성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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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정은 기쁨으로 충만할 수도 있지만 우리를 항상 고통에 취약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기쁨과 고통은 우리가 한 곳을 바라보도록 한다. 바로 십자가다. 17쪽


저녁을 먹는데 책을 보던 둘째가 뭐가 맘에 들지 않는지 소리를 질러댔다. 다른 때 같으면 즉각 반응을 해서 둘째에게 싫은 소리를 했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상담을 다녀온 터라 아무 반응을 하지 말자고 했다. 무관심하면 알아서 수그러질 거라고 하는데도 남편은 그 상황을 못 견뎌했다. 급기야 상담을 다녀서 뭐가 나아졌냐고, 소리 지르는 이유 하나 못 알아내면서 그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말에 숨이 턱 막혀 버렸다. 그걸 모르니까 상담을 다니는 거고 상담하는 곳에서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고 그걸 알아가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둘째는 소리 지르는 걸 멈추지 않았고, 읽던 책을 가져와서는 어느 한쪽만 보면 계속 울고 있기에 들고 온 책을 북북 찢어버렸다. ‘이제 됐지? 안 울 거지?’ 물으니 둘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첫째는 왜 내책을 찢냐며 울어버리고, 가족 세 명이 나를 둘러싸고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 같아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혹은 내가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거나.

가족은 영적 전쟁이다. 29쪽

순간 올라오는 기분대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까 하다가도 이 구절이 떠올라 멈칫했다. 첫째에게 책을 찢은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 주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주무르며 ‘미안해. 답답해서 그랬어. 답답해서.’ 라고 했다. 그 순간 ‘먼저 제자가 되지 않으면 가족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생물학적 피가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로 이뤄진 가족의 일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기쁨과 책임이 뒤따른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제자 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고, 믿음의 가정이라고 하면서도 기쁨만 누리려 하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씁쓸해져 버렸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하나님 나라의 원리 속에서 생명을 발견하는 방법은 생명을 잃는 것이다(막 8:35). 이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되찾는 길은 우리의 가족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93쪽

가족이 우상화 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영적 전쟁을 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면서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순간이 깨질까, 내가 쳐 놓은 울타리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원하는 가족을 되찾는 길이 가족의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거라니. 순간 멍해졌다.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은 가족의 가치가 얼마나 많은 잘못된 것들에 휘둘리고 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그러다 가족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 가족을 버리라거나, 가족을 소중히 여기지 말라는 말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히려 가족을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먼저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하기에 솔직하게 드러낸다. 지금껏 이렇게 적나라하게 가족의 의미를 내놓은 책도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반항적인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성경 위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정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십자가 앞에서의 남자와 여자, 결혼, 성性, 이혼, 자녀, 부모에 대해서 거침없이 얘기한다. 거기다 현재의 문제를 절대 회피하지 않는다. 교회가 시대의 물음에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김형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복음, 십자가, 가정, 교회,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내가 숨기고 싶고, 피하고 싶고, 마주하기 싫어했던 것들이어서 얼마나 가정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삶은 우리를 자유케 하여 가족을 이상화하지도 않고 악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게 한다. 십자가에서 짐이 축복인 것을 볼 때, 우리는 가족을 짐으로 여기거나 싫어하지 않게 된다. 424쪽

가정과 연결 된 이야기는 방대한 분량이 되어버렸지만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게 한다. 복음을 깨닫는 것, 하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모습을 기억하는 것, 그럼에도 이런 나를 용서하시고 복음으로 자유롭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럴 때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는 물론 기꺼이 짐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앞으로도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고통이다.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닌, 임재의 징표라는 것을 배웠’으므로 기꺼이 사랑을 배우고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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