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옹이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15
노석미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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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울어서 데리고 나왔나 싶다가도 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라 좀 의아했다. 그런데도 계속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방충망을 열고 봤더니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고기 냄새를 맡고 왔나 싶어 괜히 고양이한테 말을 걸어봤는데 나를 보자마자 베란다 창문 아래 틈으로 휙 숨어버렸다. 길고양이를 돌봐준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신비로운 초록 눈으로 마치 나를 바라보고 있는 표지만 봐도 기분이 묘해진다. 눈을 보고 있기만 해도 빨려들 것 같은데 이 고양이는 길 고양이다. 그래서 늘 배가 고프다. 사람들은 길에 사는 이름 없는 고양이가 싫어 빗자루로 쫓으며 저리 가라고 하니 고양이도 사람들을 싫어한다. 수다스러운 새도 싫고, 방정맞은 개도 싫고, 특히 소년들은 더 싫어한다. 짜증 가득한 고양이는 ‘정말이지 모든 게 다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한 소년이 고양이를 향해 ‘냐옹아!’ 하며 말을 건다. 고양이는 그저 귀찮다고만 여긴다. 그러다 비가 오는 날 벤치 밑에 웅크리며 비를 피하고 있는데 초록색 곰돌이 우산을 쓴 소년이 또 ‘냐옹아!’하며 말을 걸어온다. 고양이는 누가 냐옹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소년은 고양이에게 우산을 씌워주고는 비를 맞고 돌아간다. 모든 게 귀찮고 새침한 고양이는 그제야 처음으로 눈빛이 바뀐다. ‘왜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지?’ 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소년의 마음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고양이는 소년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다. 궁금한 게 싫다고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소년의 집 앞에 가게 된다. 소년은 다정한 목소리로 냐옹이에게 인사를 한다. 고양이는 쑥스러운 게 싫으면서도 소년의 시선을 완전히 피하지는 않는다. 그런 고양이에게 소년은 예쁘게 생겼다고 칭찬해준다.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 고양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저 길에 사는 고양이에 늘 배가 고프고 사람들이 모두 싫어했는데 소년에게는 예쁘고 특별한 고양이가 되었다. 늘 사람들에게 멀찍이 떨어져서 모든 게 귀찮았던 고양이는 그제야 소년을 제대로 바라본다. 냐옹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소년이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여는 법을, 새로운 존재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 같다.

소년과 고양이를 보더라도 새로운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데 먼저 좋다는 표현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먼저 다가와준 소년을 보며 길에 살던 고양이가 서서히 마음을 여는 모습은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엄청난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누군가의 말을 비유해보자면 소년이 고양이에게 마음을 연 것이 모든 길고양이들에게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냐옹이’라고 이름 붙인 고양이에게만큼은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꼭 끝까지 한결 같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단 마음이 열리는 대로 해 보는 것도 용기다. 다음에 또 우리 집 베란다에 고양이가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 그때의 마음을 따라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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