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국민서관 그림동화 161
가즈노 고하라 글.그림, 이수란 옮김 / 국민서관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새벽 2시가 넘은 시각, 낚시 프로그램을 배경음악처럼 켜 놓은 채 노트북을 켜놓고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재운 뒤 밀린 집안일도 하고, 간식도 먹고 오랜만에 내 시간을 갖고 있다. 내 시간은 낮에도 가질 수 있지만 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결코 같은 시간일 수가 없다. 오후 내내 두통에 시달려 누워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그러다 마음을 내내 괴롭히던 밀린 리뷰를 쓰고 있는데, 편하게 쓸 수 있는 그림책들을 잔뜩 꺼내 다시 보니 또 새롭다. 이미 읽은 책이지만 이 책도 깊은 밤에 읽으니 또 다른 느낌이다. 한밤중에만 문을 여는 도서관의 이야기인데, 정말 존재한다면 지금 찾아가고 싶어지는 도서관이다.


한밤중에만 문을 여는 도서관이라 꼬마 사서 외에 세 마리의 올빼미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밤이 되면 근처에 사는 동물들이 도서관을 찾았고, 꼬마 사서와 올빼미들은 바빴지만 늘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책을 읽는 시간이 늘 평화롭고 조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북적이는 도서관에서 그들이 열심히 일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람쥐 밴드가 도서관이 떠나갈 듯 연주를 해댔고, 조용히 해달라는 말에 사과를 하면서 다음 콘서트 때 연주할 멋진 노래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꼬마 사서는 음악을 맘껏 연주할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고 책을 읽는 방에는 다시 고요함을 찾을 수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나는 조용히 하고 있다는 이유로 예의를 지키지 못한 사람을 볼 때마다 속으로 불만을 토해낼 때가 많다. 하지만 꼬마 사서가 다람쥐 밴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존하는 것에 대해 새롭게 배우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함께 공간에 머무르기보다, 나만의 편의만 살필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 꼬마 사서가 책장 꼭대기에 앉아 울고 있는 늑대 아가씨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슬퍼 울고 있는 늑대 아가씨의 손을 잡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으로 데려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함께 책을 읽었다. 꼬마 사서와 세 마리의 올빼미는 그 이야기가 아주 행복하게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을 잘 표현한 단순한 색 때문에 판화처럼 느껴지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밤의 도서관의 느낌이 물씬 살아난다. 해가 떠올라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즐겁게 도서관을 나서고 꼬마 사서는 그들을 배웅하는 모습에서 여전히 밤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거북 청년은 모든 동물들이 돌아간 뒤에도 느릿느릿 책을 읽고 있었다. 500쪽 밖에 안 남았다며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북 청년에게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책을 빌려갈 수 잇게 해준다. 꼬마 사서와 올빼미들의 도움으로 카드를 만들고 등에 책을 선물처럼 싸매고 가는 거북이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마지막 동물 친구까지 모두 보낸 뒤 꼬마 사서와 올빼미들은 도서관 청소를 한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책을 찾아 들고 꼬마 사서와 올빼미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날이 밝았으니 올빼미들이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기 위해서였다.


한때 책이 너무 좋아 사서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무조건 책만 좋아해야만 사서가 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책을 함께 읽는 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것도 필요하고, 당연하게도 다양한 일들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함을 느낀다. 한밤의 도서관을 여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 모든 일을 싫은 소리 없이 해 내는 모습을 보며 책만 좋아하는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누는 건 어쩌면 그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라 서로 도울 때 가능하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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