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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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 자신뿐이란다. 49쪽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과할 정도로 뽀뽀를 하고 싫다고 말할 정도로 꽉 껴안는다. 아이들을 보고 있기만 해도 사랑스러울 때가 많아서 할 수 있는 한 맘껏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문장 앞에서 마음이 쿵, 떨어졌던 이유는 내 아이들이 있기 까지 나를 낳아준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내 존재감을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맡기고 간 엄마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모모에게 ‘저를 증명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제가 모하메드이고 회교도인지 알죠?’란 질문에 하밀 할아버지는 증거는 ‘너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냐는 말로 들려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두려워할 거 없다’라는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112쪽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있는 로자 아줌마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모모도 매월 받는 우편환도 끊겼고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곁에 둘 이유가 없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모모도 로자 아줌마를 두고 자신만 살자고 집을 나설 수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로자 아줌마의 건강이 점점 나빠질 때마다 자신의 곁을 떠날까봐 불안감을 다양하게 드러내지만 방황은 하되 삐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린 모모가 창녀촌을 기웃거리고, 어려워진 살림으로 도둑질을 해도 로자 아줌마가 걱정할 정도로 나쁜 길로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모모의 섬세한 감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제 모두 다 지겨워요. 로자 아줌마만 빼고요.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265쪽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유일하게 있었던 누군가(모모의 아빠라고 주장하는 사람)를 호되게 쫓아버리고, 우편환이 오지 않을 때도 모모를 보살펴주고, 무엇보다 모모를 깊이 사랑해주었다. 모모가 떠나 버릴까봐, 너무 빨리 큰 아이가 되어버리는 게 싫어서 모모의 나이를 속일 만큼 말이다. 로자 아줌마도 모모만큼이나 모모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게 겁이 났다고 말했다. 로자 아줌마는 몸을 파는 일을 할 수 없어지면서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그녀가 살아온 삶,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환경들이 결코 녹록치 않아 씁쓸함을 안겨 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이야기는 사랑이 바탕이 되었기에 피할 수 없는 로자 아줌마의 죽음, 불확실한 모모의 미래 같은 온갖 어둠을 물리칠 수 있었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돕는 손길이 많아졌고,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311쪽


하밀 할아버지는 사랑 없이도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었던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비롯한 이웃들, 그리고 로자 아줌마의 죽음과 자신에게 다가온 새로운 가족 등을 통해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모의 말마따나 결국 ‘사랑해야 한다.’ 사랑만이 많은 걸 이기게 해줄지도 모른다. 인내와 수고로움이 뒤 따를 때도 많지만 사랑만이 해결사일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14살 모모에게 내 앞에 주어진 생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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