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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오는 우연의 만남은 어떠한 결과를 낳든 숙명적일 수 밖에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매개물은 사람이 아니라 음악과 책이 더 자주였다. 한 음악가나 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혹평 되거나 난해하거나 지금껏 발표된 분위기와 다른 것을 첫 만남으로 대했을 때 나는 그 음악가와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별 느낌없이 지나치는 작품들도 많지만 명성에 비해 나의 만족감을 채우지 못할때는 이런 아쉬움이 든다. 다른 작품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랬다면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그들의 작품을 많이 듣고 읽는 건 깊은 인연이라 생각한다.
거창하게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이 책이 성석제님의 작품 중에서 첫 만남이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성석제님의 문체, 이야기에 대해 신선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설레임으로 책장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신선함을 만나기도 전에 이 책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예감했다. 무언가가 내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극과 잔인한 우울함이 깃든 현실의 부분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피하는 나의 편독에는 이러한 요소들을 만나기 싫어서였다. 현실을 살고 있으면서 현실을 피한다는 나의 편독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지만 음지의 한가운데를 살아가기에 양지만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가 많이 덮어버렸다.
책 속의 감정들이 책 밖으로 비져나올라 치면 나는 황급히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 우울의 짙음은 책을 읽어나가는 페이지 수 만큼 두꺼워지고 농도도 짙어가고 있었기에 나의 도망은 자주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길 곁의 잔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관심의 유도 속에서 허우적 댈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가는 것을 책 읽기의 즐거움으로 꼽기도 하지만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계속 드러나게 하는 참말로 좋은 날은 제목과는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극을 달리고 있었다.
7편의 단편이 다 그러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였지만 툭툭 불거지던 꽃이 한꺼번에 와르르 피어나듯 우울함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특히 마지막 작품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는 희망이라곤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 어둠을 그려낸 작품에다 살아 있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몰락을 그리고 있있다. 지나가는 말로 들어도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웠을텐데 그 세세함을 만나야 하는 나는 깊은 어둠을 맛 보고 있었다. 삶이 이래야만 하는 걸까 과연 나는 이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져보지만 그들이 그려내는 좌절과 현실의 팍팍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음일터다.
결말을 바꿀 힘도 처음부터 곁길만 존재했던 그들 앞에 그 곁길을 벗어나라고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없었다.
행복은 이렇게 먼 것일까, 과연 행복은 큰 것 에서 나오는 것인가 수없이 질문을 던져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귀가 멀어져 가는 아내, 부모와 자식간의 끈이 끊어져 버릴 듯 변해가는 딸, 집을 잃고 갈 곳이 없는 가족,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작품 뿐만이 아닌 다른 작품 속에서도 나의 우울을 끌어내었던 것은 가족의 불화였고 가정의 파괴였다. 존재감 상실로 이어지는 혈연관게는 예의를 차리지 않은지 오래였고 같은 공간에서 겨우 겨우 형식의 틀을 이어갈 뿐 가족이라는 허울만 겨우 뒤집어 쓰고 있었다.
거기다 저자의 언어는 태연히 그 모든 것을 그려내고 있었기에 잔인한 우울의 탓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지 헷갈릴 정도였다.
저자가 만들어낸 세계의 사람들, 실재로 존재하고 있는 어둠의 실체, 자꾸 엇나가 버리는 그들을 보면서 이것은 나와 상관없다, 난 현실이 싫어 라고 언제까지 외칠 수 있을까. 그 또한 내가 버릴 수 없는 잔인함이로다.
이러한 내용이였기에 성석제님에 대한 인상은 이 책으로 관철될 것이다.
다른 책을 읽어 봐야겠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미 맛 본 쓴맛을 단맛으로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또한 성석제님과 나와의 숙명이고 나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좋을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