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학교 - 학교 밖에서 배우는 사랑 교육
김상훈.윤정희 지음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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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믿고 따라와 주는 아이들로 인해 저는 행복한 아빠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걸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저는 고백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주님이 계신 천국이라고요. 95쪽


식탁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았는데 아이 둘이 식탁 밑에서 장난을 치더니 급기야는 싸우고 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은 그저 소소한 일상에 불과하지만 과연 ‘이 자리가 주님이 계신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다 아이들이 진정되고 거실에서 각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 생각이 달라진다. 행복이 별 거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이유는 충분한데 왜 늘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런 고백을 하는 것도 지겨울 정도로 나는 변화와 거리가 먼 사람 같이 느껴져 매일 좌절할 때가 많다.

첫째보다 느리고, 고집 세고, 떼쟁이인 둘째를 키우면서 아이 수와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많은 수고로움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많은 부모가 기꺼이 그 과정을 거치는 건 사랑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처럼 ‘아이들은 자기 삶에 교사이고 스승’이라는 말이 비로소 깨달아 간다. 그럼에도 열 한 명의 아이를 입양해 함께 가족을 만들어 가는 이 가정을 보고 있으면 ‘나는 11명이나 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니니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말라’거나 혹은 ‘그나마 내가 속한 환경이 더 낫네’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하나의 개체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자녀는 부모의 능력이나 힘, 물질로 키울 수 없음을,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기도와 순종으로 양육되어짐을 다시 한 번 온몸으로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62쪽

11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면서 처음부터 지금처럼 홈스쿨을 한다거나,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학교를 보내준다거나, 하고 싶어 하는 걸 존중해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첫째 하은이와 둘째 하선이를 입양한 후에 매일 백화점에서 하는 수업을 하며 아이의 교육에 열을 내던 시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하선이가 많이 아팠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사역을 꿈꾸게 되었고, 수입이 많은 직장을 양심적인 문제로 관두면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단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을 계속 입양했고, 그러다보니 13명의 대가족이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픈 아이들이 많아 거의 10년은 치료에 힘썼고, 10년은 아이들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말씀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순간 은혜 받아 하나님께 무언가를 하겠다며 약속한 모든 게 쉽게 무너진다는 걸 알았지요. 144쪽

어떠한 상황에서도 철저히 말씀 중심으로 아이들을 양육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맘껏 사랑을 표현했고, 부모가 먼저 사랑을 실천했다. 이미 ‘자녀는 결코 돈으로 양육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분명 나도 하나님께서 내 아이들을 치료해주시고 어루만져주신 감사한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종종 내 소유인양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신경질 부리고, 내 기분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함께 살아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여기면서도 정작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자꾸 줄어드는 것 같다. 남편과 내가 믿음의 가정을 만들겠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처음의 그 다짐이 점점 흐려지고 세상의 관점(무조건 무시하고 피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으로 바라보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본다.

그저 기다렸지요. 인내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사랑의 따듯한 미소를 날립니다. 244쪽

49개월인 둘째가 기저귀를 뗀지 이제 5일이 되었다. 다섯 살이 되도록 기저귀를 떼지 못한 둘째를 보며 내 탓인가 싶다가도, 어쩔 땐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둘째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아이의 기준에 맞춰 아이를 다그쳤다면 기저귀를 떼는 데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부터 둘째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가자마자 그런 말을 했다. 둘째가 네 살이긴 하지만 저는 세 살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말도, 행동도 많이 느리다고. 그런 행동을 고치고 싶은 게 아니라 엄마로서 놓치고 있는 게 있는지 그걸 짚어 달라고 했다. 이제 6개월 정도 되었는데 소장님께서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와 주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과도 이런 부분을 얘기하고 기저귀 떼기에 대한 고민을 얘기했는데 둘째에게 맞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며 잘 기다려준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정하고 기다려주기까지 많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11명의 아이를 키우는 이 가정을 통해 더 기다려야 함을,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사랑의 미소를 끊임없이 보내줘야 함을 배운다. 부디 이런 깨달음이 말씀으로 되살아나 쉽게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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