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머신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적 부모님이 모두 잠든 깊은 밤, 마당을 서성이며 별자리를 보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별자리 공을 하나 얻은 후 그 공과 하늘을 비교하고 신기해하며 한껏 고개를 젖힌 후 보던 밤하늘을 잊을 수 없다.

별똥별을 본 후 혼자 흥분해 날뛰던 밤이며 수 많은 추억이 깃든 시골집 마당의 밤하늘은 이제 추억이 되었지만 이젠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가지가 생각날 것 같다.

 

별똥별 머신으로 나오코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가지.

6년의 짝사랑의 고백을 멋지게 한 후 가지와 나오코는 하나가 되었다.

설레임과 깊은 융화감이 기든 연인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사랑을 해본적이 언제이던가 감상에 빠지기도 전에 그들의 미래는 내 밤하늘의 추억처럼 흔적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오로지 추억만이 존재한채.

외국의 섬에서 낯선 여자와 버스 추락 사고로 죽은 가지.

나오코에겐 그의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죽어버린 낯선 여자에 대한 질투심으로 혼란스럽고 괴롭기만 하다. 늘 가지는 나오코 안에 잠재되어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지만 나오코는 가지의 친구였던 다쿠미와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가지와는 완전히 다른 다쿠미지만 언제든 보고 있으면 힘이 나기에 나오코는 그에게 점점 의지해간다.

그러나 가지를 잊을 순 없다. 가지는 그녀 곁에 없으니 그와의 추억은 더욱 더 미화되어서 그녀를 짓누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다쿠미도 마찬가지다. 가지의 연인을 자기 연인으로 만들었지만 가지를 잊지 못하는 나오코를 알고 자신 또한 가지를 진정 좋아했기에 가지라는 울타리 안에서 태연히 가지를 의식하지 않은 척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지는 소중한 사랑이자 친구였기에 그리고 가지와의 추억도 남달랐기에. 가지는 멋진 녀석이였기에.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은 가지 주위를 멤돌며 그렇게 힘든 사랑을 꾸려갈 것인가. 서로 잘 알고 있지만 모른척 하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나오코는 우연히 동창회에 갔다가 가지에 대한 친구들의 제 멋대로의 말을 듣고 다쿠미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둘은 각자 무너져 버린다. 가지가 살아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채 가지를 그리워하며.

그러나 그들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가지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위치와 연결고리의 존재를 인정한 채 말이다. 그러곤 말한다.

우린 가지를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고. 그들은 비로소 마음 속에 품었던 가지를 공유함으로써 가지와의 이별을 극복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가지와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가지를 배신하는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분명 그들은 힘든 상황에서 힘든 사랑을 하고 있었지만 가지가 서로에게 특별하기에 가지를 잊을 수 없기에 차라리 가지를 서로 공유한 채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처음엔 힘이 들겠지만 그게 오히려 가지 안에 갇혀 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가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리움이 짙어 지더라도 그 아픈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건 가지를 잘 아는 둘이기에 상처회복이 더 빠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속도는 느리지만 그들의 출발은 힘차 보인다. 가지와 나오코와 다쿠미는 그렇게 그들의 추억을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소소한 일상 가운데에서 평화롭게. 그들의 마음속엔 가지와 새로운 연인과 같이 살아가는 힘겨움과 즐거움이 함께 존재하더라도 말이다.

 

이별 후의 그들의 모습은 그랬기에 조금씩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무조건 가지와의 추억을 미화시키는 것 보다 그 추억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삶의 희망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지가 죽어서만이 아닌 우리는 이별에 익숙해져야 하고 익숙해 지더라도 이별엔 늘 서투르기에 이별 후의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별과 절대 친해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나오코와 다쿠미를 통해 이별 후의 상실감만이 아닌 살아가는 힘을 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늘 가지가 따라다니더라도.

 

 

오타발견 : p.195 근본족인 -> 근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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