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이다희 옮김 / 달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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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와 정말 친해지고 싶었다.

번역가 이윤기님처럼 셰익스피어가 위대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내게는 와 닿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책에서 마주치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의 찬사 속에 나는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윤기님이 번역한 <한 여름 밤의 꿈>과 <겨울 이야기>가 나온 걸 보고 우선 <한 여름 밤의 꿈>을 구입했다.

당시에는 오역에 대한 차이에 민감할 때라서 오로지 이윤기님의 번역 하나만 믿고 모험을 강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번역의 세계에서 이윤기님의 명성은 자자했고 이윤기님이 번역한 몇몇의 작품을 읽어 보니 나쁘지 않아 익숙해진 이름이였다.

그렇게 마주한 <한 여름 밤의 꿈>은 예상 외로 많은 것을 던져 주었다.

셰익스피어는 위대하지만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깸과 동시에 왜 위대한지 그 이유를 직접 보여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화 시킨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재미는 알고 있지만 문학 작품으로 마주한 셰익스피어는 시대적 배경을 뚫지 못했고 정서적 낯섬까지 미디어화 시킨 작품들처럼 재미를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바로 오역의 문제였다.

수 없이 번역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에서 어찌 그렇게 죄다 재미없게 번역했는지 셰익스피어 작품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음에도 이윤기님의 번역 앞에서 분개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고등학교때 읽은 4대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등은 셰익스피어가 너무 유명해서 읽은게 전부였지 재미 있어서 읽었던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여름 밤의 꿈>은 달랐다.

우선 재미있었고 셰익스피어와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겨울 이야기>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나도 셰익스피어에 매료되어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 번역하겠다던 이윤기님의 다음 번역판을 마치 셰익스피어의 신간을 기다리듯이 기다렸다.

2005년 7월의 일이였다.

 

2005년부터 그렇게 줄곧 기다렸건만 결국 2006년에는 책이 나오지 않아 슬슬 포기하고 있을 때쯤 올 초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온 것이다.

마냥 기뻤다. 2005년 여름에 만끽했던 그 희열을 또 느낄 수 있을 것을 생각하니 설레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마주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번에도 역시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재미있게 읽었고 다음 번역을 또 목메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압축 파일 풀기의 경험'을 겪어본 터라 푹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동경과 찬사는 전 작품을 읽은 후 만큼은 아니였지만(이미 경험을 했기에...) <한 여름 밤의 꿈>이나 <겨울 이야기>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나 책을 통해 신물이 날 정도로 봐온 터라 기존의 작품들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미디어의 영향에 익숙해져 있는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미미한 비교의 다름은 묘한 흥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실제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주한 시간적 공간적인 짧음에서 느껴지는 충동적이고 철부지 같은 사랑은 미성숙화 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이제 막 14살이 되려는 줄리엣의 결단력과 그들의 대화는 굉장히 성숙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봤을때는 사랑에 눈이 멀어 불꽃 같은 사랑을 했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들의 사랑이 절절하면서도 미성숙하다는 말을 뱉을 수 있는 것은 미디어에서 보았던 그들의 애절한 눈빛과 몸짓을 포함해 그들에게 할애된 시간이 책에서는 너무나 짧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오래오래 기억되는 것은 비극적인 면이 있어 안타까운 것도 있겠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며 불꽃같은 희열을 맛보기를 갈망하기에 부족한 면을 감싸주며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시각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있을 사랑의 환상을 꺼내줌으로써 그러한 각색에 익숙해져서 그들의 사랑의 속삭임에서 재빨리 시간적 공간적인 짧은 만남을 건너 뛰어야 하는 애로 사항도 있었찌만 어찌 되었든 그들의 사랑은 애절 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희생이 사랑의 안타까움과 집안의 평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만남, 대화에서 충동적이였다는 발언을 하였지만 책의 곳곳에서 그들의 사랑의 진실을 충분히 느낄 수도 있기에 미디어의 멜로적인 각색에 대한 비판인지도 모른다.

마치 셰익스피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가라고 알고 있었지만 호메로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등 그들이 쓴 작품에 정통했고 그들의 작품을 탐독했기에 훌륭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배경을 알고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사놓았지만 결국 아직까지 읽지 못했고 여전히 셰익스피어에 무지 하듯이 앞으로 번역될 셰익스피어 작품을 비교하며 읽고 그 번역 기간이 길어진다면 앞에서 언급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세계 뿐만이 아니라 한층 더 깊이 있는 문학으로의 탐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행복을 만끽 할 수 있다는 건 감히 문학의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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