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 어차피 노인네니까! 41쪽
시장에서 오징어 낚시를 하다 바지에 물총을 맞은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 하자 부인이 ‘굳이 갈아입으러 가고 그래요. 금방 마를 텐데.’ 라며 말린다. 하필 젖은 부위가 오줌 싼 것처럼 오해할 수 있어 갈아입으려다 ‘어차피 노인네니까.’ 하고 그냥 둔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좀 씁쓸했다. 노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아줌만데 뭐, 어때?’ 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에는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작용한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는 옷이 꼬질꼬질해도, 화장기 하나 없고 배가 나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육아에 찌들어 나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점점 커서 몸이 자유로워지면서도 타인의 눈살을 찌푸릴 정도만 아니면 역시나 아줌만데 뭐 어떠냐는 식으로 넘어갈 때가 많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소소한 일상을 공감 있게 담아내서 좋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무심코 지나가는 대화에 내 경험을 끌어낼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타인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면서 안도하듯 지나쳐버리는 내 일상들을 되짚어 보는 것.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는 책들도 좋지만 종종 이렇게 긴장감을 늦추고 편하게 사색할 수 있는 책도 좋다. 읽고 나서 ‘무슨 얘기를 읽은 거지?’란 느낌이 남지 않아도 뿌듯한 책이라고나 할까? 제목처럼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이야기는 그렇게 노부부의 일상, 딸의 일상,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세상의 넓이는 느끼는 것은 ‘이동’ 뿐만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내 안의 힘이야. 140쪽
홀로 여행을 떠난 히토미 씨가 여행하면서 한 생각이다. 여행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것과 목적은 여러 가지겠지만 눈으로 보고 직접 발로 뛰지 않아도 ‘내 안의 힘’으로도 세상의 넓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특히나 움직이는 것, 여행, 직접 발을 내딛어 찾아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적확한 말일 정도로 울림을 주었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그것 또한 마찬가지지 않을까? 외부의 수많은 유혹과 자극이 들어올 때 적절히 ‘내 안의 힘’에 미루어 결정하고 따라가는 것. 물론 언제나 ‘내 안의 힘’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중심이 잡혀있을 때와 없을 때의 혼란을 알기 때문에 ‘내 안의 힘’을 기르자고 해석했다.
며칠 전 인생은 길어야 백 년이기 때문에 인생은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는 강연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길어야 100년이라고 했듯이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에 소소할지라도 의미를 두면 좀 달라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담은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의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기에 내 삶을 다양한 이미를 두어 만끽해보려 한다. 특별한 변화는 없을지라도 매일매일 다채로운 날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기면 그 사실에 감사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