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남자네 집' 을 읽고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는 신간이다.
'그 남자네 집'은 소설이였지만 '호미'는 산문집이라서 조금은 더 관심이 가면서도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남자네 집'에서 자자의 솔직함을 보며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이렇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솔직함에 묻어 나오는 투덜거림이 조금은 진부해서 잠시 주춤거렸는지도 모른다.
 
이번의 책은 어떤 느낌일까 라는 설레임과 혹시 이번에도 푸념거리가 많은건 아닐까하는 걱정 가운데 마주한 '호미'는 우선 깔끔했다.
책 크기가 다른 책들에 비해 조금은 아담해서 손에 잡기도 편했고 어디에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책에 빠지다보니 읽은 시간은 적었지만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추억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읽고, 병원 대기길 복도에서 읽고, 혼자서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그 시끄러운 던킨 도너츠에서도 읽고, 버스정류장에서 철퍼덕 거리고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이렇듯 책 속의 이야기와 나의 추억이 겹쳐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내듯 자잘한 일상 속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특히 1장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는 마침 명절이라 시골집으로 향하는 내게 가장 찬란한 예찬이 되고 있었다. 분명 시골에서 자라서 저자의 전원생활의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도 수 많은 불편들을 감수하며 나는 과연 살 수 있을까란 생각들을 하며 그렇게 사색에 빠졌다.
내가 늘 스쳐 버렸던 것들, 밟고 지나쳤던 것들에게 말을 걸고 친해지는 모습이 잠시나마 나를 정화시켜 주었다고나 할까.
분명 자연속에서 친화력을 갖으면서 그런 여유를 느끼지만 어느새 시멘트 건물이 그득한 도심으로 돌아오면 나의 마음은 시멘트 보다 더 굳게 닫혀 버리고 만다.
그 마음을 계속 지킬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마는 것일까.
 
 
 
확실히 산문집 속의 저자의 글에서는 세월의 향이 묻어났다.
자연예찬뿐만이 아니라 표현력과 몰입하게 되는 끌림까지 언어의 구사는 담백했다.
연륜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과 경험에서 나오는 생생함의 조화라고나 할까.
때로는 아이같고 때로는 노인 같고 때로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내 한몸 아끼지 않는 불굴의 청년으로도 보이는 저자의 이면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허우적대며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현실이 돌아오고 들은 적이 있는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시각으로 보는 또 다른 추억은 서서히 '그 남자네 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꼿꼿하고 칼칼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반복되는 이야기 속의 푸념을 잔소리로만 인식해버리는 굳어버린 귀와 내 마음 때문이리라.
어쩜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왔을때에 현실감을 잊고자 현실도피를 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펴든 내 마음을 들켜버린 후 그래 주지 못했다고 이렇게 모순된 푸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자연속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첫 시작의 울림을 피할 수 없는 나의 삶으로의 회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무조건 현실도피만 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은 정당하지 못하리라.
 
평범하고 자잘하다고 생각하는 일생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취할 수 없듯이 그 안에서 평안을 찾는것, 긍정적인 아픔을 품는 것, 혹은 중립을 취하더라도 나의 일상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늘 똑같은 일상의 패턴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 나를 제대로 내려다보고 내 자신에 솔직해져 간다면 현실도피를 일삼는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나 같은 젊은이의 생각이 이러할진대 문학과 함께 하였다지만 이젠 할머니의 소리를 들어도 어색하지 않는 작가 박완서님은 어떠할까.
일흔이 넘은 노인이라고 말하지만 글 속에서 늙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할머니라 칭하는 것은 열정적인 삶의 모습이요 나의 부끄러운 잔상을 말하는 것일뿐 고리타분함이라든가 세대갈등을 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나이를 뛰어넘는 저력에 대한 자그마한 찬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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