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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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버스정류장에서 한 할아버지가 어린 학생에게 소리치는 것을 목격했다. 학생은 버스정류장 전광판에서 노선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전광판이 안 보인다며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학생은 무안해서 정류장을 벗어났고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한 아주머니께서 학생한테 나오라고 좋게 말하지 왜 그렇게 뭐라고 하느냐고 한 마디 하자 할아버지도 맞받아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광경과 내가 보아온 몇몇 일들이 겹치면서 노인들은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너그럽지 못하는지 내심 못 마땅했다. 나도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 노인이 되겠지만 내가 보아온 노인들의 모습으로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스스로 살아 온 세월의 결이라 여겼다.


늙은이는 공격적이고 언제나 저기압이다. 81쪽

이 문장을 보며, 저자 또한 노인이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하며 이유 없이 마음이 옹색해 지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일상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피로한데 의외로 정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놀랐다.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 짐작하고 덤벼들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겼고, 생각하고 싶은 문장에 메모지도 붙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글이 너무 솔직해서 마음을 열게 되었고(그 나이가 되면 숨길 게 없어지는 걸까, 아니면 저자만의 개성일까?), 끼니마다 맛이 상상이 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저자를 보면서 엄마 음식이 생각났다.

아, 무섭다. 이건 혹시 내가 노인이 된 증거가 아닐까? 늙으면 어제 먹은 음식은 까먹어도 어릴 적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진다던데. 53쪽

박찬일 작가는 ‘음식은 추억과 기억의 매개체인 게 분명하다.’고 했는데 이 문장과 함께 내 어릴 적 기억이 얽히면서 음식에 관한 여러 추억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해주던 팥묵이며 명절이면 집에서 만들었던 유과, 무조건 밥 말아 먹었던 시레기국까지. 임신 중에 엄마의 시레기국이 먹고 싶어 장장 7시간을 거쳐 친정에 내려왔던 일과 결국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던 일들이 떠올라 음식의 추억과 기억의 연관성과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저자 또한 일상을 꼼꼼히 기록하며, 성장과정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나이의 상관관계를 따지곤 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아아, 이런 게정신병이다. (187쪽)’ 스스로 성격이 안 좋다고 말하고, 변덕스런 내면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 같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려는 모습 같기도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성장하는 것인지, 늙어가는 것인지,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183쪽)’ 는 문장 앞에는 30대 후반인 나도 확신이 없었다. 이런 기분이 나이 들어서까지 느껴진다면 노인이기에 스스로를 다스리고 너그러워져야 하는 건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글만 봐도 어떠한 환상을 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 더 나아가 우울하고 극단적인 모습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음을(혹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이렇듯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보며 내가 숨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이렇듯 쉽게 고백하고 시원해질 수 있는 것들을 붙잡고 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자는 암 선고를 받고 2년 남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랫동안 괴롭혔던 우울증이 사라지고 알차게 변했다고 했다. 우리의 수많은 고민도 어쩌면 불확실한 죽음 때문이 아닐까란 겸손한 마음을 가져본다.

반면 ‘인생은 번거롭고 힘들지만 밥을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 날도 있고 하루를 때우듯 보내는 날도 있는데 그럼에도 어떻게든 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완벽하든, 엉망진창이든 어쨌든 그것도 나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나로 살아가려면 어찌 되었든 나의 일상이, 사고가 진솔해야 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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