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인가 우연인가 -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파헤치다
리 스트로벨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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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란, 역사 속에 활동해 오신 하나님을 보여 줄 목적으로 평소의 자연 질서에 한시적으로 예외가 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행하시는 사건이다. 30쪽


머리로는 익히 알고 있다. 기적이란 단어도 종종 사용한다. 하지만 정말 성경에 적힌 하나님의 기적을 온전히 믿느냐고 묻는다면 단박에 대답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고 싶지만 기적에 관한 부분을 마주할 때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신앙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는 사람의 얘기도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떨까? 실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앙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능치 못하실 일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믿음이지만 정 안 되면 억지로라도 믿어 넘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느니 억지로라도 믿고 넘겨 더 큰 하나님을 만나라고 말이다.

그러다 기독교는 그러한 의심에서 출발하는 게 당연하다는 조언도 들었다. 그리고 복음이 제대로 들어왔을 때 왜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어떻게 믿어지는지도 경험했다. 나처럼 보잘것없는 존재를 영원까지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고, 부활을 인정하면서 의심은 걷혔다. 하지만 정말 기적을 바라며 기도했을 때 반대의 경우를 목격한 적도 많다. 내 입으로 아픈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안수하셔서 온 몸이 깨끗하게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갖고 있었다. 내 기도가 부족할 때면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끝내 치유하지 못하고 하나님 곁으로 간 성도들을 볼 때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몰랐다. 오히려 죽음을 목전에 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평안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내게 과연 그런 믿음이 있는가? 나라면 이렇게 평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저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부활의 진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294쪽

무신론자였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혹은 그 반대인 사람들의 인터뷰와 기적을 체험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생각났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적을 나는 이미 여러 번 체험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첫 아이를 출산할 때 임신중독증인 줄 모르고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앰뷸런스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가던 일. 너무 고통스러워 여기서 깨어나지 못하면 죽는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무사히 딸아이가 태어났고 그 뒤에 수많은 사람들의 중보기도가 있었다는 사실. 첫 아이의 돌 무렵 두 다리 길이가 맞지 않아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아이 다리를 붙들고 중보기도를 100일만 해보라던 형부의 말을 듣고 일 년 뒤에 건강해졌던 일. 둘째가 태중에서 호흡이 없어 응급으로 수술했지만 뇌손상을 입었던 일. 많은 사람의 기도 속에 100일 뒤에는 뇌손상이 말끔히 사라진 일. 내가 만난 하나님을 자연법과 개연성을 운운하며 비논리적이라며 반박한다면 나 역시도 당신의 주관적인 감정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나 은혜 안에서 주관적인 감정에 치우치는 나 일지라도 나는 몇 번이나 하나님의 기적을,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고 말이다.

철저한 무신론자에다 노련한 저널리스트였던 저자가 기적을 신앙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흥미롭다. 뭐랄까.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며, 근거가 부족하고 논리정연하지 않다며 하나님과 성경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반박한다고 해야 할까? 은혜가 충만해 명쾌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터뷰 내용은 확연하게 다르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 보여 놀랐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적당히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을지라도 나름 평안한 상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드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마지막 인터뷰어인 한 철학과 교수는 오랜 생활 아내의 투병을 지켜보는 일이 괴로우면서도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는 모습에서 마음이 찡했다. 누군가 ‘요즘 어떠십니까?’ 라고 인사한다면 사실대로 ‘밧줄에 매달려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요. 그런데 다행히 그 밧줄을 하나님이 엮으셨다고 말입니다.’ 라고 대답할 거라고 했다.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이 불완전한 삶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기꺼이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인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삶을 목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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