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를 버린 논어
공자 지음, 임자헌 옮김 / 루페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정말 읽고 싶은데 내 역량이 되지 않아 읽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분야별로 다양한데 그 가운데 <논어>도 단연 상위권에 들지 않을까 싶다. 논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책이 지금까지 언급되는 게 궁금하면서도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실생활과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저히 자신도 없고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를 것 같은데 어떻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랬던 내가 <논어>를 읽었다. 가장 큰 용기가 되었던 것은 이 책의 번역 때문이었다. 논어를 완역한 책인데, 흔히 들어온 군자와 소인이란 단어가 없다. 그리고 ‘공자님 말씀’에 비속어, 유행어, 외래어가 섞여 있다. 즉 나처럼 <논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단 읽을 수 있게 한 다음 논어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하는 번역자의 뜻이 보였다. 그리고 멋지게 먹혀들었다.


공자가 말했다. “「시경」의 시 300편을 한마디로 하면 이거다. 맑은 마음.” 32쪽

이렇게 <논어>의 해석과 함께 번역자의 생각과 느낌이 곁들어진 게 이 책의 구성이다. 「시경」의 ‘맑은 마음’에 대한 번역자의 느낌은 신박하다 못해 논어를 계속 읽고 싶게 만든다. ‘솔직의 탈을 쓴 직설, 독설 때문에 일상에 크고 작은 빡침이 있었다면 자, 맑은 시의 바다에서 잠시 쉬시면서 셀 위 댄스?’ 라고 말해준다. 그저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보다 이렇게 공감해주고 알아먹기 쉽게 말해 주니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이런 말은 어떤가.

공자가 말했다. “이번엔 부모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해볼게요. 부모님이 잘못하는 것을 보게 되잖아요? 그럼 돌직구 날리지 말고 돌리고 돌려서 감정 상하시지 않게 부드럽게 일러드려야 해요.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부모님이 내 말을 따라서 고치지 않으시잖아요? 그래도 또 공경스럽게 대해야 하고 엇나가면 안 돼요. 물론 피곤하죠. 그래도 원망하면 안 되는 거예요.”

- 나를 낳고 길러준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막무가내 효도를 스스로 세뇌할 것인가? 공자는 부딪히라고, 부모님의 잘못된 생각에 끊임없이 부딪치라고 말한다. 대신 언성을 높이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부드럽게 돌려 말하라고 한다. 건강하게 집요해야 하는 것이다. (71~72쪽)

효도는 어렵다. 자식 된 도리도 어렵다. 그런데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평화롭게 살아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서로 부딪히는 모습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절하고 도리에 맞게 하라고 알려준다. 번역자 또한 ‘건강하게 집요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논어>가 고리타분하게 잔소리만 하는 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공자가 말했다. “아, 어떡하지? 아, 어떡하지? 하며 전전긍긍 애쓰지 않는 인간한테는 나도 뭘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요.”


-발은 내가 떼는 거다. 좋은 선생님이 날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283쪽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그 선택도 내가 해야 하고, 선택에 따른 긍정과 후회의 몫도 모두 내 책임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나서서 해주기를,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내 뜻과 다르면 원망의 대상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할 때가 많다. 현재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는 내 스스로가 발을 떼어 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는 기대 없이 스스로 독립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발을 떼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알아먹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며 온전히 깨달았다. 그리고 번역자의 말마따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을 너무 낡은 언어로 마주하고 있었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알아먹지 못해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알아먹기 쉬운 말로 논어를 읽고, 번역자의 생각을 더듬다 보니 왜 <논어>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바람직함, 사람다움,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은 세월이 지나도 본질이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 더 많이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었다. 혼자 살아간다 해도 필요한 것이 사람다움인데, 하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다움을 잃어버리면 그게 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한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논어>에는 현인의 깨달음과 조언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일 뿐 <논어>는 결코 낡은 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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