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역사와 삶의 철학이 만나는 살아 있는 기록 청소년 철학창고 12
사마천 지음, 고은수 엮음 / 풀빛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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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읽어야지 다짐했던 책을 읽고 나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최근에 그런 독서를 좀 했는데 이 책도 그 중 한 권이다. 중국 역사서이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자성어들이 <사기>에서 유래된 사실이란 정도만 알고 있지만 책을 읽어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청소년들이 접하기 쉽게 쓰인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 낱낱이 파악되지는 않지만 다음에는 완역본으로 정독할 자신감을 얻었+다. 읽고 싶은데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책이라면 일단 쉽게 쓰인 책부터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기>는 오제 시대부터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총 3천 년의 총체적인 기록이라고 한다. 아무리 총체적인 기록이라고 해도 3천 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니, 얼마나 방대할지 잠시 아찔했다. 하지만 단순히 연대순의 서술이 아닌, 통치자 중심으로 한 기전체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좀 더 흐름을 파악하는데 용이했다. 각 시대의 주요한 인물과 당시의 제도와 문물, 경제 실태, 자연 현상 등으로 분류하여 특징과 변동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시대의 연결은 잘 되지 않더라고 인물 중심으로 연결해 기억할 수 있었다. 사마천은 영웅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업가, 코미디언, 여성, 실패한 인물 들을 평가해 자신만의 역사관과 가치관이 함께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나서 여기저기서 들었던 왕들이 정립이 되었던 경험처럼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띄엄띄엄 알고 있었던 인물들이 정리가 되었다. 특히 여불위와 진시황제의 관계,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적 의미, 왕위를 세습하지 않았던 요, 순 임금, 토사구팽 당한 한신의 내막까지 상세히 알게 되니 그제야 사마천이 의도했던 그만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런 비참한 운명 앞에서도 이 책을 썼고 그랬기에 인간의 삶과 죽음, 운명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기에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사기>는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을까? 평소에 어렵다 여기고 있던 터라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는 그 자체에 중점을 두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현재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할 수 있고 그 안에서 혜안을 얻으려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록위마의 고사만 보더라도 진실을 은폐하고 황제를 우롱하는 신하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당시에만 일어난 일일까? 현대에도 이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고 거짓 증언을 하고, 언론이 국민을 속이는 일도 허다하다. 황제가 사슴을 보고 사슴이라 말하자 ‘말’이라고 대답하는 신하들이 있다면 당당하게 ‘사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껏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로 인해 현재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믿는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거짓이 줄어들 것이며, 더딜지라도 건강한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믿는다. 때론 그런 살마들을 외면하고, 귀찮아하는 일도 많지만 그런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거짓에 맞서는 일이라 생각한다. <사기>가 내게 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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