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윗집 사이에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9
최명숙 글.그림 / 고래뱃속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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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어놓으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요즘인데 우리 집은 현관문을 열 수가 없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질러대는 둘째 때문에 온 방문은 물론 때론 베란다 문을 닫고 있을 때도 있다. 그리고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안방에 들어가 아이와 한바탕 한다. 아이는 울고, 나는 울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그것도 안 되면 아이의 발바닥을 때린다. 이내 곧 후회를 하지만 정말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를 어찌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너무 많다. 분명 내가 이렇게 한바탕 아이와 싸우면 아랫집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아파트라 우리 집에서도 윗집의 소리가 다 들리는데 아랫집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아랫집에서 한 번도 항의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랫집에 사람이 살지 않거나 천사가 살 거라고 말이다.


 

이 책은 글이 없다. 그럼에도 충분히 흐름을 알 수 있고 어떤 상황인지를 알며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유추할 수 있다. 우리 집과는 달리 책에서는 아이들이 떠들면 아랫집 할아버지는 부리나케 올라와서 고함을 친다. 한 번은 생일파티 때 할아버지가 올라와 분위기를 망친 적이 있다. 분명 공동주택이니 주의해야 하지만 조금만 소음이 나면 올라오는 할아버지 때문에 윗집은 항상 가시방석이다. 항상 조심한다고 하지만 엄마가 외출하고 아이들만 둘이 남겨졌을 때 역시나 시끄럽게 떠들었고 이내 할아버지가 쫓아올 거라 생각하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올라와야 할 할아버지는 올라오지 않았고 심지어 잠잠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사실을 알렸고,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할아버지는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구급차에 실려 할아버지는 병원에 이송되었고 얼마 뒤에 아이는 공을 갖고 놓다 엘리베이터에서 할아버지를 만난다. 아이는 또 할아버지에게 혼이 날까 잔뜩 겁을 먹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다정하게 공을 주워준다.

예민했던 할아버지는 사건이 있은 후 달라졌다. 아이들 덕분에 고비를 넘겼고, 그런 아이들이 다르게 보였음은 당연하다. 아이들도 그런 할아버지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될 거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윗집에 새로운 이웃이 놀러오고 음식을 들고 인사갔던 엄마는 그 집에도 아이들이 있음을 알고 친하게 지낸다. 그리고 집이 아닌 밖으로 나가 공동주택에서 지켜야 할 예의와 배려를 자연스레 알려준다. 함께 잘 사는 게 분명 어렵지만 어쩌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 있음을 이 책을 보면서 느낀다. 조금만 배려하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해주면 얼굴을 붉힐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과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고집을 부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다툼과 이견 차이가 발생하겠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한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그게 쉽지 않음을 느끼지만 그렇기에 늘 조심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언제든 반대의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얼마 전 서재방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책을 읽고 있는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새벽 2시. 싸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복도 창문으로 살펴보니 6층에서 싸우고 있었다. 무슨 큰 일이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심한 드잡이가 오가더니 결국 경찰이 와서 아줌마 두 명을 데려갔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싸움의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저렇게 앞 뒤 가리지 않을 정도로 큰 싸움을 벌일 일이 뭐가 있었을까 싶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새벽 2시라는 의아함과 함께 이내 곧 잊어버렸지만 때론 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 공동주택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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