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참 좋다! 춤추는 카멜레온 115
바바라 레이드 글.그림, 서소영 옮김 / 키즈엠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조용한 아이들에게는 정다운 친구가 되어요.’ 라면서 나무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자 어릴 적 나름대로의 피난처였던 소나무가 생각났다.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의 당산나무 근처에 꽤 두툼한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중 가지 하나가 좀 낮았다. 어린 내가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나무였는데, 높이가 적당해서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심심하거나, 그냥 생각할 일이 있으면 그 소나무에 자주 올라갔다. 그때부터 나는 조용한 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나무가 주는 편안함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셈이었다.


얼마 전, 집 앞 사거리 횡단보도 앞 가로수 한그루가 뽑혀 나가는 걸 보았다. 신호대기 할 때 나무 아래 있으면 햇빛도 피할 수 있어서 유용했는데 왜 뽑아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항의라도 해봤을까? 그러진 않았을 것 같지만 최근에야 나무를 뽑아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무를 뽑아내고 횡단보도와 경사면을 만든 후 그곳은 자전거 전용 보도라고 떡 하니 새겨 놓았다. 동네사람이 아니라면 그곳에 나무가 있었는지 모를 수 있지만 오랫동안 그 나무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자전거와 사람을 구분하자고 오래된 나무를 뽑아내는 일. 안전을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여름이 되면 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게 고역이 될 것임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무가 뽑혀나간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햇빛을 가려줄 수 없다는 이유로 나도 어쩌면 나무를 그저 편의로만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책에서는 ‘나무는 요술쟁이’라면서 하늘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나무와 사람과 묘하게 닮아 있는 모습, 터널도 되고 바다가 되는 나무숲을 보여준다. 물론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나무도 나이를 먹어가고 무엇보다 계절을 가장 빨리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나무라고 말이다. 책 속의 나무를 보며 인간과 나름대로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순식간에 뽑혀나간 횡단보도 앞의 나무를 생각하니 좀 우울해졌다. 몇 년 전에 시골집 뒷마당을 정비한다고 큰 오빠가 그곳에 있는 나무를 모두 뽑았을 때는 무척 허무했다. 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유독 홍시가 맛있는 감나무가 있었고, 단감이 맛있는 나무도 있었다. 그리고 키우던 고양이가 죽자 그 나무 아래 묻고, 벌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순수했던 나는 벌들을 모아 묻어줬던 기억도 있다.) 공간이 사라져버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보았던 벚꽃나무, 가을이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겨울이면 앙상해지는 가지로 충분한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무가 참 좋아요!’ 라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추억이 담긴 나무가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 몇 백 년 씩 나이를 먹은 나무를 볼 때마다 그 아래 머물렀던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처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곳에 있는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보고, 많은 일을 겪었을까 싶다가도 외롭진 않았는지, 좀 사색이 깊어질 때가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억이 담긴 나무와 함께 커간다는 것. 그 소중함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만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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