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 - 100년의 지혜, 老 철학자가 말하는 기독교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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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정말 좋다!’는 감탄사가 나왔다. 어쩜 이렇게 믿음 안에서 통찰력이 있는지, 이렇게 명확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낱낱이 만나면서도 교회가 해야 할 일들(또는 우리가 교회에서 기대해야 할 것들)과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짚어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적확하게 말할 수 있는지 다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았다. 1920년에 태어난 저자가 100세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그래서인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고, 함께 학교를 다녔던 이가 윤동주시인과 황순원 작가라는 일화를 들을 때면 기분이 묘해졌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연륜 때문인지,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기 때문인지 자꾸 따져보려 들다가도 결국은 신앙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예수님의 교훈이 내 인생관이 되고, 내 가치관이 되고, 더 크게 말하면 내 세계관이 됐다. 내 인생관과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한 나는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듯이 예수님 자체가 인생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선뜻 질문할 수 없는 여러 가지가 말끔히 해갈되어서 너무 개운했다.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가 탄생할 수 있었던 역사는 물론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천주교의 차이가 맞물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유럽의 교회가 문을 닫는 이유, 우리나라의 기복신앙과 ‘교회에만 매몰되는 교회주의’가 빚어내는 위험도 말해주고 있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당혹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정작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되는대로 신앙이 흘러갔다. 그렇다보니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 교회를 떠난 이들, 제대로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을 쉽게 비난했고 서서히 무뎌져 갔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렸다. 비난 대신 그저 기도만 해주면 되는 것을 내 마음이 좁아 너그럽지 못했던 순간들이 참으로 많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그분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늘나라를 위한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 90쪽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교회 안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등등)이 어렵고 힘들게 만들 때마다 이 뜻을 잊지 않는다면 분명 흔들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삶을 살아가다 보니 어렴풋하게 깨닫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만났다. 교회의 성장이 멈춘 이유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염려의 해결책으로 ‘교회가 교리만 찾고 종교적 진리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진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인류에게 희망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답을 해주어야 한다는 대안에 교회와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초점이 잡혔다.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책임’이 있는데 책임을 지기는커녕 복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보았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사랑이 있는 고생이 가장 고귀한 것이고 예수님 또한 그렇게 사셨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22쪽

자꾸 성전중심의 공간신앙에 얽매이고, 기복신앙적인 기도만 하게 되고, 율법에 얽매어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흔적들이 내게도 여전히 남아있다. 조금씩 내 신앙을 정립하고 있던 와중에 이 책을 읽었고 저자의 바람처럼 항상 새로운 ‘나’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깨닫고 배운 것이 너무나 많다. 기도의 중요성은 물론이고(철없이 드렸던 기도를 세월이 지나면 주님께서 높이실테니 열심히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소유가 아닌 베푸는 것이 목적이며, 문제의식이 있을 때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내 그릇에 넘치는 것은 받을 생각도 말고, 자녀에 대해 욕심내지 말고 ‘이다음에 50, 60이 됐을 때 세상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지에 대해, 그들의 미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인생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깨달아 다른 사람의 짐을 사랑으로 대신 져주는 것’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이라는 사실이 가장 크다.

최근에 집 소유에 대한 집착이 나를 뒤흔들 일이 있었다. 모든 것에 의미를 잃어 기운을 잃었고, 자꾸 내 환경을 탓하게 되었다. 분명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으면 응답이 있을 것 같은데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나는 그 답과 마주하기 싫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이 책을 읽었고 ‘집은 살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지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라는 말씀 앞에 정확하게 정답을 주신다며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이어 집의 노예가 되는 사람이 어리석다는 말씀에 그간 나를 괴롭혔던 고민을 털어버렸다. 물론 좋은 집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은 소망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능력 밖이고, 내 것이 아니며, 좋은 집이 주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할거란 생각을 떨쳐버렸다. 나는 늘 이렇게 어리석은데 주님은 한결같이 이런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시고 사랑해주신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기대하며 살아갈 삶이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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