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그림 친구들 작은 곰자리 7
크리스 투가스 지음, 박수현 옮김 / 책읽는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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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을 정말 못 그린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미술학원에 보낼 거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나의 그림 실력을 그대로 타고 날까봐 무서웠다고나 할까? 그만큼 그림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그림 그리는 것에 자신이 없고 창피하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되면 나도 미술수업을 받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행히 6살 딸아이는 나보다 그림 실력이 좀 낫다. 유치원에서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고 오는 것 같아 항상 나보다 훨씬 잘 그린다고 칭찬 해준다.

그래서 표지의 아이만 봐도 아찔해진다. 아이는 온통 물감이 묻은 옷을 입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 하고 있는데, 그림 그리는 걸 두려워하는 나는 그저 어지러운 기분만 든다. 아이는 즐겁게 자신의 친구들이 집을 어지럽혔다고 말하며 방 안을 보여주는데 그야말로 다양한 그림도구들로 빽빽하다. 어떻게 저렇게 붓과 물감과 도구들이 많은지 의아할 정도다. 하긴, 좁은 집에 내 책이 3,000권이 넘는 것과 비교해보면 아이의 마음이 크게 공감이 가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큰 도화지 앞에서 고민에 빠져 있다. 도화지에는 ‘내 화판에서 잔치한다. 미.도.알.챙’ 이라고 적혀 있다.

도무지 미.도.알.챙이 뭔 뜻인지 추측이 되지 않는 가운데 연필들과 지우개가 신나게 떠들며 이야기 하고 있다. 연필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다른 연필의 칭찬에 ‘근데 사실, 난 엉덩이가 잘 돌아가거든.’ 하며 뾰족한 연필심을 가리키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픽, 하고 나왔다. 이어서 크레용, 매직펜, 파스텔, 잉크들이 각자를 뽐내며 잔치에 임하는 모습에 아이와 그림 도구들 모두가 정말 즐거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위와 테이프는 퀴즈를 내며 즐거워하고, 풀은 가위에게 입(가위 날)을 다물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타인이 자신에게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화룡정점은 물감과 붓과 팔레트 칼이었다. 모두 합세해서 맘껏 놀다 보니 멋진 무지개가 그려진 그림이 완성되었다. 아이는 무척 만족스러워 하고 기뻐하지만 곧 ‘보시다시피, 너무 바빠서 청소는 엄두도 못 냈어요.’ 하는 부분에서 내가 도리어 한숨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아마 내 아이들이 저렇게 방을 만들어 놨다면 분명 혼을 냈을 것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

그럼에도 아무리 바빠도 다시 잔치를 벌일 시간은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정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그림 도구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사실에 괜히 흐뭇해졌다. 그리고 뒤표지에 미.도.알.챙의 뜻이 드러난다. ‘미술 도구는 알아서 챙겨 올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낙서를 할까 펜, 사인펜, 크레파스를 높은 곳에 올려둔 내가 좀 계면쩍어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종이에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는 딸아이와 옆에서 자기도 하겠다며 고집 피우는 둘째를 보며 나의 그림 실력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청소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놀이를 과하게 제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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