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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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을 탄 경험은 별로 없지만 국내선은 작년까지도 꽤 탔던 터라 비행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참 많다. 국내선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대기시간, 탑승, 출발, 비행, 도착으로 이어지는 동안 애매하고 감각 없는 순간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옆자리에 누군가만 앉아도 불편하고 어색했던 순간들. 꼭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기분 때문에 얼른 집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 느낌을 알기 때문인지 첫 단편「개와 하모니카」를 읽으면서 내가 스쳐가고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마치 생생히 살아난 것 같았다.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비행기를 탔고, 한 공간에 갇혀 이동 중인 사람들을 그저 불편하고 어색한 존재로만 여겼던 내가 좀 많이 계면쩍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저자의 단편집의 첫 작품이 느낌이 좋아 기분 좋게 출발했음에도 두 번째 단편「침실」에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불륜이 등장한 이유가 크겠지만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 책장을 정신없이 넘겨대면서도 알 수 없는 불쾌함과 어긋남이 당연하듯 드러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늦여름 해질 녘」「피크닉」도 마찬가지였다. 일상을 통째로 도려낸 것처럼 소소하고 생생하지만 계속 불편했고 왜 이런 느낌이 지속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소설을 얼른 읽고 다시 내 일상으로 혹은 첫 단편으로 돌아가 단순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겐지 이야기』를 저자의 언어로 풀어 쓴「유가오」는 푹 빠져들지 못했고, 복잡한 인물과 극단적인 사건이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알렌테주」는 게이 커플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어긋나는 것을 보며 더 피로했졌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되도록 편견을 갖지 않으려, 이번에 읽은 작품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면 몇 번의 기회를 더 가져 틀에 가두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게 첫인상이 바뀐 작가도 있고, 역으로 호의적이었던 작가가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작가로 변한 경우도 있고, 바뀌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회를 엿보는 작가도 있다. 내게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을 모두 거쳤다 신작이 나와도 관심이 잘 가지 않았던 작가로 남겨져 있었다. 오래 전 읽은 작품이 좋아 다른 작품을 읽었다가 실망하고, 또 다른 작품을 읽은 뒤로 그 느낌이 변하지 않아 오랫동안 또 다른 작품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만났는데 그렇게 썩 유쾌한 만남이 아니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긴 힘들다. 어쩌면 일상의 불편함을 보기 싫어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단편을 너무 현실로 끌어들이려는 나의 어리석음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느낀 감정들을 억지로 감추거나 과하게 불편함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나의 느낌은 이 정도였노라, 앞으로 저자의 작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이 전부다.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느낌으로 이 작품을 폄하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성향은 모두 다르므로 느끼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저 나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길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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