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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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는 감정, 말하자면 얼마쯤 죽어 있는 느낌. 내가 말하고 있는 곳에 얼마쯤 내가 없는 듯한 느낌. 7쪽

저자의 이름은 익숙한데 만난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짤막한 글들로 이뤄진 책이 저자와의 첫 만남이란 사실이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름 의미 있는 말들이 적힌 글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으로 써 간 듯한 글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나는 이 글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냥 읽는 행위에만 집중한 채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티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어느새 책이 끝이 나 있었다. 그러다 옮긴이의 글을 읽게 되었고 이 책이 저자의 ‘마지막 연인 얀 앙드레아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든한 살이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과 죽음의 서’라는 말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다시 읽으니 처음에 붕붕 떠다니던 글씨들이 점차 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니고, 여전히 글 안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에서의 사랑 고백이라고 여기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그제야 무의미했던 문장들이 조금은 가깝게 다가왔다. 특히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요. 그게 다예요.’ 라는 글은 처음 읽었을 땐 그저 책 제목이네, 하고 넘어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될 것을, 어렵기도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누구에게, 어떤 심정으로 하는 말인가를 떠올리자 이 말이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내는, 그야말로 전부를 다 걸고, 다 바치는 고백이라 여겨졌다.

끝났다고 난 생각해. 바로 내 삶이 끝났다고.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난 이제 완전히 무시무시한 여자가 돼버렸어. 난 더 함께 버틸 수가 없어. 빨리 오렴. 난 이제 입도 없고 얼굴도 없어. 81쪽

이 책의 마지막 글이 마치 저자의 마지막 말인 듯한 착각이 든다. 분명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절망에 휩싸일 때 곧잘 이런 기분이 들었던 나도, 저자가 어떤 의도로 어떤 느낌으로 썼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의미전달이 고스란히 되었다. 이런 변화와 공감대 형성이 신기하면서도 어색하고, 서글프면서도 찬란한 기분이라고 하면 이해할까? 모든 의미를 알 수 없더라도 저자가 이런 글을 남겼을 순간들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그 길을 걸어간 기분이다.

과연 나는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때론 광기 어린, 스스로도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는 말들을 토해낼 수 있을까? 당장 일 분 뒤의 일도 알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이 든 뒤에도,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무언가 고백할 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 사실 자체가 경외감이 드는 건 왜일까?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향해가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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