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중했던 것들 (볕뉘 에디션)
이기주 지음 / 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다 무심코 생각났다. 어젯밤 꿈에 예전에 사귀었던 이가 꿈에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 중이었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를 알아봤지만 마음속은 갈등하면서도 알은체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내 의중을 알았는지 어땠는지 그도 고개를 숙이며 나를 황급히 지나쳐 가는 게 보였다. 그게 다였다. 결혼 전이었다면 왜 꿈에 나왔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쓰잘머리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테지만 이제는 꿈에 나타나는 것도 시답잖게 받아들이고, 뭐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하고 만다. 나쁜 감정으로 헤어진 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이런 감정이 나올 수 있다 여겨지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되고, 다르게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졌다.

 

오히려 구체적인 이유 없이 결심을 하면 결심 뒤에 적절한 이유가 뒤따라오거나 빚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그 선택에 집중하기보다 나름의 이유를 더 열심히 찾는 경우도 있다. 훗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혹은 변명과 핑곗거리를 미리 마련해놓기 위해……. 76쪽

 

모든 일에 이런 경우가 허다했다. 타인을 비판하는 일에는 익숙하면서 내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해 어떤 일에든 적당한 이유를 찾아내 합리화 시켰다. 그건 인연에 있어서도 그랬고,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하고 있는 버릇이다. 어제 꿈에 나를 스쳐갔던 이도 분명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헤어졌을 텐데 이후의 감정들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미화시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모든 것이 틀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생각까지 하고 살지 않았는데, 감정을 섬세하게 읽어나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감각이 나를 뚫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 사람은 기운으로 사는 게 아니라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린 의기소침한 누군가에게 ‘기운 좀 내’라고 말하지만, 정작 삶을 이끄는 것은 기운이 아니라 기분이 아닐까 싶어요. 110쪽

 

정말 그런 것 같다. 기분에 따라 기운이 달라지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나의 일상들이 그렇게 시들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그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 기분대로 살아가다 보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가족들이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기분에 따라 대하는 것이 달라지는 내가 그 기분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면 내 기분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그렇지만 기분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고 과한 기복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늘 실천이 어려울 뿐.

 

프리다 칼로가 남편의 외도로 힘들어 할 당시에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이 책이 저자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물론 타인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 이야기를 옮겨놓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저자는 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섬세한 감정과 생각의 편린들이 이렇게 쌓인 게 아니었을까? 당연하게도 내가 쌓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분명 깊이 들여다보면 내 안에도, 그리고 평범해서 특별할 것 없는 내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끌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들이 생활밀착형처럼 느껴진 게 이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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