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 이후북스 책방일기
황부농 지음, 서귤 그림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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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책방을 한 번 열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크진 않더라도 동네를 꿋꿋이 지키는 나름 아기자기한 책방을 꿈꿨다. 까짓것 책이 없으면 우리 집에 있는 내 책들을 갖다 놓기만 해도 분위기가 형성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내 책들을 불특정 다수가 읽고 뒤적이는 걸 견딜 수 있을지,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쓰잘머리 없는 걱정들이 가득 채워졌다. 그러면서도 근처에 만화방이라도 생기면 괜히 질투심이 일었다. 나도 저렇게 책방 열고 싶은데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와는 달리 독립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나는 절대 책방 같은 건 못 열겠구나란 생각과 부럽다는 생각이 쉴 새 없이 교차해 그냥 나만의 책방 같은 건 생각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책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읽어주는 이들이 있어야 비로소 책은 책으로서 빛난다. 11쪽

내가 읽음으로써 빛난 책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리고 내 책장에는 아직 빛을 못 내는 책과, 빛을 내고 있는 책, 그리고 빛을 내었지만 빛을 잃어가는 책, 그리고 오래도록 빛날 책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책들을 보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지만 언젠가는 모두 빛나게 해주겠다는 다짐을(스스로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곤 한다. 그래서 여전히 그게 빛인지 아닌지 존재조차 모르는 책들이 더 많을 것 같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적어도 이 순간에는 <굵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이 책을 빛나게 해주었다고 믿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그 안에 담긴 고민과 기쁨, 그리고 번뇌까지 무겁지 않고 솔직하고 때론 웃기게 담아 놓았다. 서슴없이 책방에 와 달라고 질척대고, 책을 사줘야 굶어 죽지 않는다고 징징대고, 책방의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소화하는 모습을 보며 크기는 작을지 몰라도 스펙터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이 느껴졌다.

매일매일 같은 공간에 나와 자리를 지키고 책과 음료를 판매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책방에 있으면 한가롭게 책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소개하는 책들을 사람들이 막 사가지 않을까란 착각을 보란 듯이 일깨워 주는 글을 읽고 있으면 역시 독자와 사업자는 확실히 다름을 느꼈다. 어떨 때는 둘의 경계가 없다가도 음료 판매와 책 판매 매출을 고민하고 다행히도(?) 책 판매비용이 더 많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안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행보가 계속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책을 사가는 사람이 꾸준하기를, 지금처럼 매력적인 책방이 계속 유지되기를 말이다.

책방이라는 매력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게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은 ‘이후’에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후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때론 추천한 책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았을지 고민하는 부분에서는 책임의 영역을 능가한 다른 것을 보았다. 성심성의껏 추천했지만 한 권의 책이 각각의 독자에게 닿는 방법과 이유는 모두 다르기에 같을 수 없음을 나 또한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래서 있는 자리에서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꼭 책에서만 그럴까. 모든 순간을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한다면 좀 피곤할지 몰라도 적어도 삶의 생기는 잃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난 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서점 위치를 찾아봤다. 작년까지 매달 다녔던 치과 근처인 것을 알고는 나도 모르게 안타까운 탄성이 나왔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분명 치과 가는 길에 들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꿋꿋이 내 자리에서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도 나만의 응원 방식이라 여기면서 아쉬움을 덜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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