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아직도 미혼이었다면 하고 싶은 걸 맘껏 하면서 살고 있을까? 결혼한 뒤로 그런 상상을 정말 쉴 새 없이 해봤지만 늘 답은 똑 부러지게 나오지 않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 하에 할 수 있는 상상의 한계였기에 그야 말로 ‘만약에’로 끝나버린다. 여행도 좋아하지 않고, 혼자서는 멀리 가본적도 없으면서 저자가 패키지 투어로 다녀온 곳들을 보면서 놀랐다. 41살부터 48살까지 북유럽 오로라 여행(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독일), 몽생미셸 여행(프랑스), 리우 카니발 여행(브라질), 핑시 풍등제(타이완) 여행을 다녀 온 기록을 읽으면서 글로 표현되지 못한 더 아름답고 멋진 것들을 보고 왔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저자의 여행 동선을 따라가면서 나름대로 나만의 경로를 짜보기도 했다. 오로라 여행은 그대로 따라가고, 프랑스는 남부로, 브라질 대신 파타고니아로 가겠다며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저자가 브라질 여행을 하면서 패키지 투어 덕에 여자 혼자서도 이렇게 다닐 수 있다며 안심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여행을 하기도 전에 걱정이 더 많아 시도조차 해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에는 좀 더 용기고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무리 경험해도 그렇게 되지 않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여행은 쌓이면 쌓일수록 더 즐겁고 느긋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선언을 했기에(그렇다고 여행을 아예 안 가겠단 뜻은 아니지만), 저자의 기록을 읽으면서 간접체험하고 상상해보고 느껴보는 것이 좋았다. 여행지가 어디쯤인지 지도를 보고, 그곳에서 본 풍경과 맛있는 음식들, 기념품들을 꼼꼼히 보다 보면 마치 내가 과거에 그곳을 여행한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 타이완의 지우펀 사진을 보고 낯이 익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올 초에 타이완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온 조카가 준 엽서가 생각났다. 내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사다주었는데 정작 나는 받아놓고도 잊어 먹고 있었다. 그러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가 되었다고 하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지브리 스튜디오 홈페이지에는 지우펀이 무대가 되었다고 확실히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장 앞에 세워져 있는 엽서와 책에 실린 사진을 나란히 비교해보니 기분이 묘해져서 웃음이 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저자가 2011년~2017년 사이에 여행한 기록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기간에 난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니 더 그런 기분이 들었나보다. 결혼을 하고 육아만 하던 시기라 나에 대한 기억이 없는 시기에 여행한 저자의 글이라 훌쩍 떠나고 싶기도 했다. 가족과 나의 자잘한 걱정과 근심은 덜어놓고 훌쩍 다녀올 수 있는 여행. 상상만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출발도 못할 것 같지만 만약 미혼이었다면 한번쯤 미친 척 하고 실행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패키지 투어라는 안전하고 편리한 장치가 있으니 혼자라는 두려움을 떨치고 말이다. 저자 또한 혼자 여행하면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나는 나의 한 번뿐인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을 만나러 온 것이다.(85쪽)’라고 했으니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망이기도하고 나 역시 그런 바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당장 그럴 수 없기에 그런 소망은 더 소중하고, 타인의 여행을 질투로 바라보지 않고 언젠가 떠날 나의 여행으로 대입해보는 것. 그것이 여행을 행복하게 기다리는 방법이 아닐까? 거기다 내 주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야를 가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상의 여행이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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