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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보이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8
비키 그랜트 지음, 이도영 그림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2월
평점 :
학교 다닐 때 이름은 평범해서 놀림감이 되진 않았지만 외모로 붙여진 별명은 꽤 있었다. 지금은 절대 이마를 까고 다니지 않지만 중학교 때는 왜 그랬는지 앞머리를 내릴 생각을 못했다. 내 이마는 꽤 넓은 편이었는데 그래서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 황비홍이었다. 한참 황비홍이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나도 그 시리즈를 모두 봤지만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붙여준 별명치고는 고약했다. 처음에는 놀리는 아이를 응징하고 다니다, 나중에는 포기하고 될 대로 되란 식이었다.
이 책 속의 주인공 댄 호그는 나보다 좀, 아니 많이 심하게 놀림을 받았다. 돼지(hog)를 뜻하는 이름이 들어갔으니 얼마나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을까? 거기다 몸도 비쩍 말랐고, 머리모양도 튀고, 두꺼운 안경까지 썼으니, 안타깝게도 ‘왕따’를 당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특히 등치가 큰 셰인은 지독하게 댄을 놀려댔는데, 툭하면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줘서 학교에서 돼지가 있는 농장으로 견학을 간다고 했을 때도 오히려 댄 호그가 더 주인공이 될 정도였다.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일일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농장으로 견학을 가는 날. 버스 안에서부터 댄은 셰인에게 또 괴롭힘을 당하고 코피까지 흘린다. 크리저 선생님은 일일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능력을 보이면서 댄 호그를 보호해주지만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선생님의 보호를 받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게 농장체험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셰인을 피해 괴롭힘을 덜 당할지 고민하는 사이 아이들을 안내하기로 한 농부아저씨를 만나긴 하는데 점점 이상한 분위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농장을 소개해주는 아저씨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챘을 것이다. 문신이 가득하고, 상스런 말을 내 뱉고, 눈빛도 험악한 아저씨를 크리저 선생님이 이상하게 여겨 밖에서 이야기하자고 나갔지만 선생님이 아프다는 말만 들려오고 아이들은 꼼짝없이 그 아저씨의 인솔 아래 움직이게 된다. 만약 댄 호그가 알러지 때문에 재채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휴지를 가지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더라면 모두 끔찍한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휴지를 가지러 간다고 허락을 받았지만 알러지 약을 먹어야 멈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버스로 몰래 간다. 그리고 거기서 손이 묶인 채로 피습을 당한 버스기사 아저씨와 크리저 선생님을 발견하다. 그리고 댄 호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 견학장소로 돌아간다.
급기야 아이들이 모두 갇히게 되고 혼자 몰래 빠져나온 댄 호그는 그 남자가 끔찍한 일을 저지를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댄 호그는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것과 이런 상황에 멘붕이 온다. 늘 왕따를 당하고,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댄 호그가 그런 위기를 해쳐 나가는 건 영특해서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하나씩 해쳐 나간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절대 침착하지 못했지만 되돌아보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할 수 일을 해나갔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절대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던 셰인에게 말을 걸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 나중에는 둘(댄 호그, 셰인) 다 ‘댄 호그’를 싫어하지 않게 된다.
최악의 농장 체험이 될 뻔 했던 상황에서 영웅이 되어버린 댄 호그를 보면서 때론 자신의 약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기까지 많은 인내와 용기, 긍정적인 사고가 뒤따라야 하지만 그렇게 버티고 버텨 준 댄 호그가 대견해 보였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춘기 때 나도 그런 생각에 꽤 오랫동안 묻혀 있기도 했는데,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내 존재가 꼭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하루하루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댄 호그처럼 위기가 기회가 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대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