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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평점 :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19쪽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아도 마음속에 들어가 살아남는 말을, 혹여 그런 말을 남겼다고 해도 상처가 될 말들을 많이 해왔단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듯 부끄러웠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말을 생각 없이 할 때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타인에게 상처도 많이 줬고 그런 나를 경멸하던 시간도 있었다. 이 글귀를 읽었을 때 순간 나도 상처가 되었던 말들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음을, 정작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말들은 귀에서 죽게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각박해져버린 내 마음도 부끄러웠다.
나와 당신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어렵게 만든다. (중략) 평소 자신에게조차 내색하지 않던 스스로의 속마음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개 오랜 상처나 열등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사랑을 외롭게 한다. 94쪽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결혼할 때는 분명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보듬자고 했으면서 5년차가 되어가는 지금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달라도 너무 다른 서로를 향해 어렵고, 아프고, 외로운 시간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결혼 전에는 마음으로 먼저 받아들였던 사실이 이제는 마음으로 내려오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것에 좌절하고 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당신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이다. 결혼하면,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 다들 그래가 아니라 적어도 서로 좌절하고 포기하지는 말자고 말이다.
충격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로 채워둔 사람과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어느 한 시절 후회 없이 살아냈던 사람의 말은 이렇게 달랐다. 148쪽
나도 충격이었다. 나이 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자꾸 뒤만 돌아보고 있던 나였는데 나이 드는 일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누군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진짜?’ 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는 왜 현재를 과거만 돌아보고 살아가는지,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 하지 않았는지 이 구절을 읽는 순간부터 과거형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에 왜 나는 이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는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157쪽
울고 나면 일단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진다. 그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달라지는 일이 없을지라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힘도 되겠단 말에 나 역시 용기를 내본다. 이 책은 나에게 반성문 같았다. 수많은 자계서 보다 이 책이 나에겐 더 자극이 되었고 나를 변화시킬 용기를 주었다. 내가 읽어낸 초점이 전혀 다를지라도 나도 저자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글의 힘이란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