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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한구석에 - 상
코노 후미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전쟁이 배경인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활자로 표현된 전쟁도 싫어하니 당연히 전쟁영화도 싫어한다. 왜 이렇게 전쟁에 관한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지 곰곰 따져보니 인간의 잔악함이 내게는 너무 크게 부각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때면 큰 호흡을 하고 다짐을 해야 할 정도다. 그래서 이 만화의 배경이 태평양 전쟁이라고 했을 때, 많은 고민이 들었다. 전쟁 자체를 싫어하는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배경이 된 만화라니.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설 것 같아서 피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꾹 읽어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에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전쟁은 어디서나 비극이라는 사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이 배경이지만 한 여인의 성장기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1934년 1월부터 1946년 1월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도, 일본도 전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비극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주인공 스즈에게 전쟁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때는 그나마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시집을 가고, 불안함이 고조되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날이었다. 쿠레 군항 공습과 원자폭탄 투하가 있었던 히로시마가 배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스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 어디선가 들은 이 말이 스즈에게,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잔인하리만큼 맞는 말처럼 들렸다.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지만 집안일을 힘껏 도우며 열심이고, 나름 꿈도 있었던 소녀 스즈는 결혼을 해서도 힘든 일과가 이어진다. 남편도 서먹서먹하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가운데, 서서히 서로의 사랑을 깨달아 가기도 하고 마지막엔 남편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그래도 스즈는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철저한 고증이었다. 글을 통해 더 상세히 알게 되었지만 스즈가 살고 있는 배경을 보면 마치 당시 내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세세하다. 삶의 고단함, 전쟁의 폐해, 일본 내에서도 사람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단절시켜버렸는지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의 배경을 알고 읽기가 꺼려졌음에도 이런 만화가 있다는 사실도, 우리나라에 광복이 된 날이자 일본이 전쟁에 패배한 날, 거리에 걸린 태극기를 보며 스즈가 의미심장하게 한 말도 몰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폭력으로 복종시킨 나라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말. 스즈 또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꿈이 좌절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즈의 말처럼 폭력이 폭력을 불러오는 일을 역사는 똑바로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격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처절하게 들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