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1 - 이상한 의사 아르테 오리지널 6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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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가 넘은 시각. 아이들을 재워야 함에도 불을 환하게 켜놓고 베개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었다. 아껴 읽었음에도 막바지에 다다라서 마저 읽고 잠들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큰소리로 웃고, 핑 도는 눈물을 감추려 콧물을 훌쩍였는데 이런 나를 보면서 아이들이 내 옆에 각자 자리를 잡았다. 첫째는 한글 쓰기에 여념이 없고, 둘째는 평소 좋아하는 책을 가져오더니 읽어달라고 보챈다. 몇 번 읽어주니 알아서 책을 보고 있는 시간이 참 평화로웠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책을 마저 읽고 아이들을 힘껏 안아준 뒤 함께 잠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유난히도 감사한 밤이었다.


 

서울살이가 힘들다는 친구에게 딱하나 부러운 게 있다면 바로 의료시설이라고 했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근처 대학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고 말이다. 그만큼 지방에 살수록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셈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내가 살고 있는 근처 병원의 의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생각해봤다. 첫째를 낳을 때, 죽음 직전까지 갔던 나는 더 빨리 내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더 일찍 큰 병원으로 보내지 못했던 일을 경험한 뒤, 병원은 물론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뭔가 조금만 맘에 들지 않아도 의심하고 비방했음은 물론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소도시기 때문에 이렇다는 한탄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간호사나 동료 의사들로부터 ‘괴짜 의사’라고 불리는 구리하라 이치토를 보면서, 이런 의사가 가까이 있다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응급한 상황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좀 어이없는 안심이 들었다.


 

건강검진으로 우연히 담낭암이 발견된 72세 아즈미 씨. 혼자 된 지 오래고 마땅한 가족도 없는데 혹시 몰라 대학병원으로 보냈지만 무참한 답변만 듣고 온 환자. 다시 구리하라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이 병원으로 돌아와도 되냐고 물었을 때, 그러라고 손을 잡고 마음을 다독여 주는 부분에서 괴짜지만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지방 병원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며, 환자를 세심히 관찰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의『풀베개』를 수시로 읊어대도, 다른 의사들에게 별명을 붙여 유머를 불러내도, 옛 여관이었던 곳에 신혼생활을 하며 자신만큼이나 괴짜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구리하라답다고 여겨졌다.

 

의사로서의 재능과 열정, 거기에 풍류까지 알고, 내면의 따뜻함을 잊지 않은 의사. 많은 환자들이 그를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말하지만 도리어 환자들에게 더 위로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 모습에서 이 소설을 읽고 있는 것 자체가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대학병원 의국으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과 함께 얽혀가는 환자에 대한 생각들과 더불어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한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시스템을 좇아가기 바빴고, 무조건 큰 병원을 신뢰했다. 환자만큼이나 이렇게 고민하는 의사가 있다는 것. 이제야 구리하라를 만나서 행운이라는 환자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즈미 씨가 남긴 편지를 보며, 독특한 방법으로 그를 위로하고 정곡을 찔러대는 선배, 동료 의사들을 보며 그는 이 병원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 결정이 최선의 판단인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맞는 일과 안 맞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은 끝냈다고 할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실력도 있고 마음까지 맞는 의료진이 있었다. 감상적이고, 유머도 알고, 실력에 마음까지 따뜻한 의사를 만날 수 있어서 나 역시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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