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 속박에서 자유로 가는 여정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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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을 구분하는 바른 지식은 성경 전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영광스런 빛이며, 이 지식이 없다면 성경은 봉인된 책에 불과할 것이다. _19세기 루터교 목사 C.F.W.월터


그동안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고백했지만 내 신앙은 왜 정기적으로 기복적인지, 죄에 물들 때면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오로지 나의 믿음과 의지부족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곤 했지만 늘 명쾌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깊은 고민도 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절실히 깨닫고 내가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깊은 충격과 은혜에 동시에 빠졌다.


신앙은 의지가 아닙니다. 신앙은 신앙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면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다 성취하신 율법의 요구를 내가 내 순종과 의지의 노력으로 다시 채우려고 함으로써 자기 의를 쌓게 되는 것입니다. 41쪽

여기서 의지를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의지가 신앙을 대치하고 복음을 대신하게 된다는 의미’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구분하지 못해 제대로 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 ‘율법과 복음’은 과연 무엇일까? “율법은 ‘이렇게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하는 반면, 복음은 ‘내가 너를 위해서 다 했다. 그러므로 너는 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율법은 명령이고 복음은 약속이기에 ‘율법은 우리가 행해야 할 내용이고, 복음은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가 완전히 지키기 어렵다. 나처럼 기복신앙과 죄책감이 밀려왔던 건, 율법에 얽매어 죄를 뒤집어쓰고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복음의 큰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서 온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요구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 내가 성취할 수 없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해주셨음에도, 그 사실에 무지하고 스스로 왜곡해서 진정한 복음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으면서도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참담했지만, 과연 나만의 문제인지, 모두가 함께 깨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해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첫 번째 계시인 율법이 우리의 실상, 곧 우리의 실패와 절망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이 두 번째 계시니 복음을 믿게 하는 최적의 준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복음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40쪽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지 못하고, 읽지 못해서인지 내게는 율법과 복음을 구분하는 것조차도 처음엔 버거웠다. 그리고 율법에서 자유로워졌다면 멋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란 편협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율법을 제대로 구분하고,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였다면 과거의 율법에 자유롭지 못한 ‘나’로 돌아갈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변할 수 없는 사실인 것처럼, 죄가 신자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변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죄가 신자인 ‘나’를 주장하고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어야 할 육신을 지니고 있기에 죄로 가려는 본성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자연적인 본능도 비정상적인 욕망으로 바꾸는 죄의 성질 때문이다. 구원은 확실한데 “우리가 ‘이미’와 ‘아직’사이의 종말론적 긴장이라고 하는 과정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때에는 우리 몸도 영화롭게 변하겠지만, 지금은 썩고 노화될 몸을 입고 사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 모든 말들이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 짧은 식견으로 제대로 전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율법과 복음’에 대해 생각하고 구분 짓고, 나의 잘못된 과거의 생각들을 뒤집느라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지막 장 ‘복음 설교의 회복을 위하여’ 부분에서는 ‘복음이 선명하게 선포되어야’하는 설교에 대한 부분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번영신앙과 율법주의에 얽매인 기복신앙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믿고 순종하는’ 윤리 설교를, 목회자라면 하지 말아야 하고, 성도라면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된다. ‘율법과 복음’을 구분 짓고, 율법에 자유롭고 복음의 기쁨으로 가려는 과정 때문인지 지금껏 나의 신앙을 돌아보느라 바쁘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잘못된 복음을 어떻게 바로잡고 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의 내면이 갈아엎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몇몇의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괴감에 빠졌던, 복음을 전하는 어려움에서 일단 내 스스로 자유로워졌다. 나처럼 죄에 발목이 잡혀 기복적인 신앙으로 고민하는 이들과 복음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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