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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이 진짜 마술이라고? : 화학 ㅣ 주니어 대학 12
박동곤 지음, 임익종 그림 / 비룡소 / 2016년 2월
평점 :
학교 다닐 때 뭔 과목인들 싫어하지 않았겠냐만, 굳이 좋아했던 과목을 찾아보자면 국어와 체육이었다. 언뜻 보면 상반된 과목 같은데, 국어는 잘하지 못해도 책 때문에 좋아했고 체육은 그냥 부담 없이 몸을 놀리는 과목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외 과목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예술 장르인 음악과 미술에도 재능이 없었고, 이과 계열인 수학, 과학은 처참했으며, 문과 계열이지만 뭔가 외울 게 많은 사회와 역사는 그저 귀찮았다. 이렇게 나름대로 과목을 평가해 보니 학교 다닐 때 도대체 뭔 생각으로 다녔는지 모르겠다. 특출 나게 잘 하는 것도 없었고, 그냥 책읽기만 좋아했고, 쓰잘머리 없는 상상력만 뛰어났던 것 같다. 단순하게 공부 못하는 아이였으면 좋았으련만. 열등감도 심했고, 드러내기 좋아하는 참 답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궁금하지도 않은 지루한 학교 이야기를 늘어놓느냐면, 당시도 물론이거니와 현재도 전혀 관심이 없는 화학에 관한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간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싫어하던 과학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나에게는 모호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쉽게 쓰인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정말 나는 화학에 기본도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집 안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의 성분이 화학변화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좀 거짓을 보태 그저 온 우주가 합세해서 내 꿈을 도와주는(파울로 코엘료 작가 덕분이다)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화학자라는 사실에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철저히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깊은 호기심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가설을 세우며, 이를 검증하기 위하여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실험에 몰두했던 수백 년 전 연금술사들에게서 우리는 시대와 세월을 관통하는 화학자의 본모습을 엿볼 수 있다. 19쪽
연금술사들이 그렇게 찾고자 했던 것은 ‘철학자의 돌’이고, 그런 호기심과 실험으로 인해 현재의 주기율표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에겐 처음 접하는 정보 같았다. 나에겐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불의 사용과 쇠라는 신소재가 문명을 바꾸는 큰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들, 열역학 에너지, 활성화 에너지, 촉매, 원유의 열분해 공정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흥미롭게 알려 주어서 1부 <물질과 에너지로 세상을 바꾸는 화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부에서는 마리 퀴리와 라이너스 폴링에 대해 나왔는데 퀴리 부인의 위대함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을 방출하는 원소를 연구하는 과정은 너무 마음이 찡해서 그저 과학이 그녀에게는 운명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인내를 요구하는 고된 작업의 결과로 의료분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실험 과정에서 방사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바람에 골수가 다 망가져 결국은 암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수많은 역경과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난을 이겨내고 이뤄낸 업적, 그럼에도 개인의 이익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했던 그녀. 화학을 기본적으로 알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얼마나 대단하고 감동적인지를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된 것이다.
이처럼 화학의 이야기는 광범위하고 흥미롭고 나에게 많은 정보를 알게 해주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들을 마치 처음인 양 흡수한 정보가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으로 인해 화학분야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어졌다는 것과 화학자를 좇아 세상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시선(관심도에 따른 결과가 다를지라도)을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충분히 할 일을 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