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지 ㅣ 이형진의 옛 이야기 1
이형진 글 그림 / 느림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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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이 해석한 여우누이? 

옛이야기 여우누이에는 사악한 여우가 나온다. 대개는 아들 셋 있는 집에서 유난히 딸을 바라 양주가 기원해 얻는 딸이 여우딸이다. 인간의 과한 욕심을 비웃듯 딸은 장성해 여우의 본성을 드러내고 집의 가축을 해한다. 아들들이 (이야기에 따라 아들 셋 다, 혹은 막내아들만) 아버지께 누이가 여우라고 고하나 외동딸 사랑에 눈이 먼 아버지는 아들들이 외동딸을 시샘한다 내쫓고, 결국은 여우에게 줄줄이 피해를 입고 만다. 황폐해진 집에 셋째 아들이 돌아와 신물을 이용해 여우를 퇴치한다는 내용. 

위의 책들에서 여우는 그저 나쁘다. 인간의 과한 욕심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아 본보기를 보이는 의도 정도가 읽힌다 해도, 여우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해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못된 여우는 퇴치되었으니 이젠 됐다, 하고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 옛이야기에는 이런저런 감정의 결이 실리지 않으니 자세한 속을 알 수 없지만. 

이형진 작가는 그렇게 읽히던 옛이야기 여우누이를 새로 쓴다. 아마 그게 다는 아닐 거야, 여우가 그 집에 들어오고 그런 못된 짓을 하는 데는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했을까? 줄거리에 집중하고 내면을 배제하는 옛이야기의 방식에 내면의 이야기를 쓴다. 이형진 식의 해석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여우누이>가 아니라 <끝지>가 되었다.  

새끼를 둔 엄마 여우를 잡아들고 떠들썩하니 자랑하는 장면이 이 책의 새로운 해석이다.  

 

순돌이는 구슬 주머니를 치켜들고 소리칩니다.  

"넌, 넌 도대체 누구냐?"  

감자 보따리를 떨어뜨린 끝지가 얼굴을 가리고 부들부들 떱니다.  

"꿈에서 여우의 젖을 빨아 먹었어.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산속을 쫓아 다녔어."   

"..."   

"어머니가 나를 숨겨 놓고 도망쳤어. 사냥꾼! 사냥꾼이 어머니를 쫓고 있었어."   

"..."  

"어머니를 쏘아 죽인 사냥꾼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어. 그 원수의 얼굴은 바로, 바로..."   

순돌이는 아버지가 여우를 잡아 왔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던 아버지를. 옆구리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가던 커다란 여우를! 

말하자면 어린 새끼 홀로 남아 원한에 숨져간 어미의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마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끝지조차도 스스로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시작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집의 막내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한 끝지는 복수의 감정 속에 가족의 정이 스며든 걸 스스로도 어쩌지 못한다.막내오빠 순돌이를 특히 따르던 끝지가 아니던가.

순돌이와 끝지가 다시 만났을 때, 순돌이는 끝지의 원통한 사정을 알게 되자 그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인간이 여우를 사냥한다는 것, 먹기 위해서건 재미를 위해서건 그건 당연히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이건만, 순돌이는 끝지의 처량한 신세에 오히려 동정심을 느낀다. 아직 어른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락가락하는 순돌이의 마음을 따라 이 책을 읽는 어른 독자들도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느끼리라. 그렇게 이 이야기는 옛이야기의 단순함을 훌쩍 넘어서버린다. 

<끝지>는 새로운 책이다. 일방적으로 나쁜 쪽으로 구분되던 여우누이에게 일말의 정당성을 부여하여 세상 일이라는 게 그리 단순하게 선악으로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래 여우누이 이야기의 틈새로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한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세계명작 비틀어보기처럼, '알고보면 이런 뜻이 숨어있었다' 라거나,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다. 이쪽에서 보면 다 이해가 되는 일이지요.. 라는 듯.

목탄을 사용해서 흑백으로 그린 그림은 전체적으로 서늘한 느낌을 준다. 그림책으로는 상당히 새로운 시도이고, 여백이 많은 그림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야기 구조나 그림이나, 어디를 봐도 옛이야기를 즐겨 듣는 유아나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미 여우누이 이야기를 듣고 보고 자랐음직한 큰아이들, 청소년, 어른들을 독자로 정하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형식과 해석을 오히려 눈여겨보고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독자들에게 이형진은 이 책을 건넨다. 이 책 어디에도 <여우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고, '이형진의 옛이야기'라고 그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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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거미 여인의 키스> 37. 마누엘 푸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23 스캇 피츠제럴드 단편선.

<연인>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오만과 편견> 88 제인 오스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108 라우라 에스키벨 

<시계태엽 오렌지> 112 앤서니 버지스 

<춘향뎐> <사랑사랑 내사랑아> 

<1984> 77 조지 오웰  

<롤리타> 30 나보코프 

<동물농장> 5. 오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61, 테네시 윌리엄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169 제임스 M. 케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71 치누아 아체베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더 리더> 

<눈 먼 자들의 도시> 

<채털리 부인의 사랑> 

<연애 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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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의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5
에즈라 잭 키츠 글, 그림 |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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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피터의 여동생 받아들이기. 재기발랄한데다 자연스럽고 선량한 분위기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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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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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시인이자 세계의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 그에게 인생은 메타포이다. 그가 한적한 삶을 살고 싶어 택한 거처인 이슬라 네그라의 집에는 매일 수십에서 수백 통의 편지가 세계에서 날아온다. 이슬라 네그라는 수도 산티아고에서 120km 떨어진 해안 마을이다. 명망있는 시인 한 사람을 위해, 매일 몇 킬로그램 씩의 편지를 넣은 행랑을 등에 지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하는 우편배달부가 있다. 포구에 살면서, 어부 일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구한 직장이었다. 마리오 히메네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였다. 

그는 여유있는 삶을 살만한 처지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런데 그는 여유롭다. 

그는 지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호기심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머 감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생은 진정 유머러스하다. 

자신에게 콧방귀도 뀌지 않는 소녀들에게 관심 한 번 끌어보려고, 지적인 분위기를 행여 풍길 수 있을까 하여 네루다의 시집을 사서 한없이 끼고 다닌다. 그게 별 효과가 없자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책을 디밀며 백만 불짜리 헌사를 부탁한다. '파블로 네루다 드림'이라는 헌사를 받았는데, 그걸로는 자신이 유명해질 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더 긴밀한 헌사, 이를테면 초록색 잉크로 '나의 둘도 없는 벗 마리오 히메네스에게, 파블로 네루다'와 같은 헌사를 받으려는 꿈을 가진다 (네루다는 바다를 좋아해서 초록색 잉크로 시를 쓰곤 했다). 그러나 어떻게..?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 것을 시작으로 말문을 튼다. 네루다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다가 어느새 매달리는 마리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 날, 마리오가 홀딱 반해버린 여자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네루다에게 조언을 구한다. 시인은 메타포를 들려준다. 그 순간부터 마리오에게 메타포는 의미있는 그 무엇, 사랑을 얻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그 무엇이 된다.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진실을 담은 유머. 메타포가 없는 사랑과 열정을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천만에! 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게다가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오! 여기까지 왔다. 마리오는 달라졌다. 그는 네루다만큼, 당당하다.

마리오는 메타포로 사랑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가 벌이는 일들은 어찌 보면 코메디고 어찌 보면 그저 남미의 삶인 것 같다. 코메디 같은 인생이다. 어쨌든 마리오는 네루다라는 뚜쟁이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것이다. 그는 신화를 이루었다. 

네루다는 스페인에서 프랑코 독재 정권에 반기를 드는 정치적 시인이었고, 칠레로 귀국해서는 공산당에 입당했고,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70년에 투표에 의해 살바도르 아옌데 인민연합 정권이 수립된 후 네루다는 주(駐) 프랑스 대사가 되었다. 이런 실제 상황이 소설에서 그대로 네루다의 상황이 된다. 71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칠레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1973년 9월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자, 네루다는 병상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런 역사적인 상황과 중요한 역사적 인물인 네루다를 그대로 끌어와서  

스카르메타는 한 편의 경이로운 소설을 만들어냈다. 마리오 히메네스, 칠레의 정신적 지주였던 네루다에게 도와주라고 손을 내미는 민중의 이름이다. 그는 위대한 시인에게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운다. 네루다는 가르치고, 마리오는 배운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다. 유쾌함 가운데 우정이 싹튼다. 네루다에게 마리오는 어느새 '둘도 없는 벗이며 동지인 마리오 히메네스'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마지막 순간에 해야할 일을 하는, 진짜 벗이며 동지였다.

표지에는 이슬라 네그라 자택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네루다의 실제 사진이 담겨 있다. 세 개의 종이 매달려 파도 소리에 종소리를 보탠다. 아니 맑은 종소리가 숙명처럼 여겨지는 파도 소리를 밀어낼지도 모른다.. 이런 책을 언제 다시 읽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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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봤다. 이미 오래전이다. 유명한 영화이고 감동적인 영화였다.. 

며칠 전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었다. 영화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다시, 제대로 한번 더 보고 싶어진다. 책을 읽어서이다. 

1994년, 베니스 영화제에 이탈리아에서 만든 영화 <일 포스티노>가 최초로 상영되었다.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 네루다 역에 필립 느와레, 마리오 역에 마씨모 트로이시. 책에서 떠오르는 마리오보다 영화의 마리오는 나이들어보인다.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은 2004년에 <베니스의 상인>을 감독했다.)

96년, 아카데미 다섯 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외국 영화로는 73년 이래 처음으로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수상은 음악상에 그쳤지만, 이 영화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외국 영화로 꼽힌다. 

1985년, 원래는 <불타는 인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이 나오기 전까지 스카르메타는 동일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고 라디오 극으로 만들 정도로 집념을 보였다. 친구와 함께 직접 감독과 배우를 겸한 영화로도 만들었다. 스카르메타가 만든 영화는 칠레에서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94년에 만들어진 영화 <일 포스티노> 이후에 소설의 제목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바꾸었다.  

이 이야기에서 스카르메타는 '가벼운' 네루다를 창조한다. 네루다는 정치가이며 시인이었다. 네루다 시집 중 가장 어렵다는 <지상의 거처>와 장중함이 돋보이는 <모두의 노래>의 시는 별로 인용하지 않는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시나 사랑의 시들을 주로 이용한다. 이야기에 걸맞는 인용이다. 사랑의 시들 만으로도 네루다는 충분히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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